세 개의 오렌지를 위한 사랑14

또 나는 혼자된다.

by Hugo

-스물일곱 번째 날1-


산타와 마리아가 사는 나라는 옛날이야기같이 아름다웠다.

비가 오고 오렌지 나무를 적시고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단지 그 추억 속의 아내가 없었다.

그녀는 옛날이야기와 달랐다.

의심에 찬 눈을 뒤룩이며 밥투정을 하고 칭얼거리다가 악을 쓰고 욕을 했다.

그래도 어쩌다 가끔 빛바랜 추억 속에서 그 옛날의 아내가 수줍게 나타났다.

“나 때문에 아프지?”

그때마다 난 아니라고 잡아뗐다.

아내는 그러면…… .

“아프긴 뭐가 안 아파.”하고 혜인이처럼 화를 냈다.

그런 아내가 반가워서 꼭 안으면 시나브로 옛이야기는 시들어버렸다.

또 나는 혼자된다.


-스물일곱 번째 날2-


“그래서 아내 분을 유기하려고 결심했나요?”

수사관은 며칠 전 바르셀로나 공항터미널에서 항공사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던 일과 목격자의 진술을 증거로 제시했다.

더구나 아내의 여권까지 일부러 렌터카 회사에 버린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다.

혜인이라는 친숙한 이름 뒤에 숨은 망각이 낯설고 미웠다.

‘내가 아무 상관없는 그 여자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루에도 몇 번씩 내 아내를 앗아간 저주로운 운명을 원망했다.

“공관에서 법률 서비스를 직접 제공해 드리지는 않습니다.”

법무협력관이 유죄를 선고하듯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일어섰다.


-스물여덟 번째 날-


이번에는 졸피뎀을 문제 삼았다.

병원에서 아내에게 처방한 것이라고 했지만 수사관은 내 말을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떤 의사도 300정씩 3개의 약통에 담긴 수면제를 한꺼번에 과다처방할 리 없다는 것이었다.

나도 밥을 먹어야 했다고 반박했다.

졸피뎀은 원초적인 식욕을 일깨웠다.

먹어도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아내가 아픈 이후로 잃어버린 입맛을 돋우지는 않았다.

오히려 먹은 기억을 잊게 해 주었다.

그래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졸피뎀, 그것은 망각이 주는 달콤한 암브로시아였다.

어제의 기억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망각의 능력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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