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오렌지를 위한 사랑15

나는 미쳐야만 했다.

by Hugo

-스물아홉 번째 날-


아내는 고장 난 시간 속을 살아간다.

과거는 ‘이미’ 없고 미래는 ‘아직’ 없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디 있는 것일까?

아내는 하루 세알 씩 졸피뎀을 먹었다.

그것이 아내의 현재다.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런 확신을 했다.

그리고 그 하얀 알약을 삼켰다.

현재는 정방형의 폐쇄 공간 속에 있었다.

네 개의 정사각형이 서로 맞닿아 여섯 개의 벽으로 막힌 입방체,

벽마다에는 하나에서 스물 네 개의 시간이 점으로 찍혀 있었다.

운명은 아내를 가둔 정육면체의 폐쇄 공간을 던졌다.

그때마다 똑같은 정방형의 벽들이 현재를 굴렀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 아인슈타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서른 번째 날-


며칠 째 오십육 제곱미터의 방 안,

직사각형의 책상 앞에 있는 네모난 의자에 앉아있다.

“아내 분은 디멘시아로 진단을 받았죠?”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경위가 뭔가요?”

“졸피뎀이 구백 알이나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수사관은 질문만 한다.

매번 새로운 것이다.

나는 물론 성의껏 대답을 한다.

그런데도 수사관은 왜 같은 말만 하느냐고 짜증이다.

말끝마다 기억이 안 나느냐고 되묻는다.

사실 내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다.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서다.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건 풀지 못한 난제 하나가 있다.

‘미치지도 않았고 미친 짓을 할 용기조차 없을 때, 나를 어떻게 미치게 하는가?’

그것이 문제다.


-서른한 번째 날-


라만차 평원의 미치광이 기사, 돈키호테가 그랬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딜 수 없다고 말이다.

나는 미쳐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망상에 사로잡힌 아내와 망각의 세계를 거닐면서 옛 일을 추억할 수 있겠는가?

작은 멋쟁이 나비란 놈이 있다.

작고 가냘픈 날개로 아프리카에서 북유럽까지 대서양을 건넌다.

그놈들은 불가능한 망상에 빠져 굶주린 갈매기 떼들이 우글거리는 바다 한복판으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해수면에 바싹 붙어 시퍼런 파도에 들이받혀 소금에 절인 날갯짓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딘다.

미친 짓이다.

콜럼버스도 대서양을 건넜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는 미칠 용기가 없었다.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갔단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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