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오렌지를 위한 사랑23

우리, 그냥. “안녕!”

by Hugo

-마흔여섯 번째 날-


밤이슬로 깨끗이 씻은 얼굴엔 밤안개를 듬뿍 적셨어요.

그리고는 회색보다 조금 진한 파운데이션 크림을

턱과 눈꺼풀, 콧날, 뺨의 순서로 골고루 발랐답니다.

코언저리와 관자놀이처럼 낮은 부위엔 엷은 잿빛으로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 퍼프를 두드렸죠.

참, 선크림은 바르지 않아도 되요.

별 하나 없는 까만 밤이거든요.

색조화장도 않으려고 해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메이크업을 할 생각이죠.

대신 검은 장미꽃 틴트를 입술에 발라 세련된 멋을 더했답니다.

검은 거울 속엔 내 모습이 없지만 떠날 준비는 마쳤겠죠.

이렇게 작별이에요.

무슨 인사를 해야 할까요?

그리울 거라고,

다시 만나자고 하고 싶지만……,

난 기억을 못해요.

그러니까……,

우리, 그냥.

“안녕!”


-마흔일곱 번째 날-


“그래, 잘 가!”

잊기만 하면 되겠다.

하지만 일기장 속에 아내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추억을 새겼다.


'일기를 꺼내 읽지 말라.

지나간 추억이 아름다울 리 없다.

갈피 속에 간직한 단풍잎 고운데 어떠하느냐고?

그것은 스스로 목숨을 지상으로 추락한 패배자가 아니냐.

안토시안으로 물들인 너절한 옷을 걸치고,

구차하게 붉은 화장을 한 시체가 아니냐.

허무한데,

그래서 투신한 단어의 주검들이

바스러져 나뒹구는 무덤의 비석,

묵은 일기장을,

왜 들추었을까?

절망이,

저주가,

그리고 원망이

새겨 넣은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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