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달리 길은 험했다.
도시를 벗어나자 빗방울은 더욱 거세졌다.
걸음은 진창 속에 허우적대고 더디기만 했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날이었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더니 낮게 내려앉았다.
태양은 또 밝아왔지만 그 힘을 잃었다.
도시의 회색 건물엔 언제나 비가 젖고 ,
아스팔트 거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
검게 번들거렸다.
“도시의 풍요가 낳은 재앙”
전문가들은 냉철한 진단을 내렸다.
그들의 예상처럼 햇빛이 사라진 들판엔
알곡 대신 빈 쭉정이만 자랐다.
“없다!”
이 한 마디가 폭동을 일으켰다.
치켜든 횃불이 잿빛 도시를 환히 밝혔다.
시 당국은 그럴수록 곡물 가격을 올렸다.
곧 검은 거리에서 굶주림에
지친 외침은 사그라졌다.
물가는 여전히 치솟았다.
이번엔 시 당국에서 ‘곡물법’을 제정했다.
곡물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외부 유출을 막는 조치라고 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
알 수 없는 도시로 곡식을 빼돌렸습니다.”
방송사들은 매일 같이
곡식의 밀수출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시민들은 철저한 곡물관리를 요구했고,
시 당국은 지정한 공적 판매처에서만
곡물을 팔도록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배고픈 자들은
어느 누구도 곡물을 사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새벽부터 다시 새벽이 될 때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든,
안타깝게도 바로 직전에 품절이 되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배부른 자들이 나타나면
때마침 곡물이 진열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