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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go Jul 25. 2020

작은소설 7

실버스푼법

작은소설 7
살아 있는 자는 먹고 배설해야 한다.
배고픈 자들도 그래야 했다.
팔지도 않는 곡물을 먹기 바란다는 건
헛된 기대가 아닌가.
성서 속 악마는 돌로 빵을 만든다고 했다.
그런 마법쯤은 당장 굶주린 배를 위해서
거뜬히 해 낼 수 있으리라.
“먹고 배설해야 한다.”
이 단순한 진리에서 마법의 해답이 있었다.
배부른 자들의 기름진 양식만큼
그 배설물엔 양분이 풍부했다.
여기에 재를 섞고 박테리아를 배양한 다음,
발효과정을 거쳐 흑갈색의 가루가 되었다.
이것을 다시 반죽하고 오븐에 구워내면
훌륭한 빵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떡을 쪄내고 부침개를 붙이고, 

국수까지 뽑아냈다.
배고픈 자들은 이제

풍성한 식탁에서 마음껏 즐겼다.
퀴퀴한 분뇨 냄새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먹다 보면 입에 익어 오히려 구수한 맛이 났다.
먹거리시장의 판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값비싼 곡물 대신 값싼 흑갈색 가루로,
식당들은 음식을 만들고 신메뉴를 선보였다.
식품공장들은 스프나 죽, 컵라면같이
저렴하고 다양한 간편식을 생산했다.
폭등했던 곡물 가격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덩달아 시 당국의 세수입이 줄면서
흑갈색 가루는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배설물을

식용으로 사용하면서
병원균과 기생충에 감염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이에 전격적으로

식품관련 산업에 대한 위생 점검에 나섰다.
시 당국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경찰 측 자료를 근거로

흑갈색 가루의 유통을 금지하고
곡물사용을 권고하는 

‘실버 스푼법’을 재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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