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에서 온 그 남자
6.
“허이구, 이자묵은 눈알맹이 땜시 고추만 죽었구먼유. 그랴서 그냥 내버려 뒀시유?”
“뭐 워쩌겄어. 앵경가게부터 데리고 가서 눈알맹이를 새로 만들어 넣었제. 그란디, 이놈의 영감탱이가 노망이나도 엥간히 나야지. 고추밭에서 또 눈알맹이를 이자묵은 겨. 그때부텀 고추는 만져보도 못혔어.”
“성님두, 남정네들 있는디 민망허게 고추를 만지고 지랄유.”
“환장허겄네, 죽은 영감이 들으믄 서방질하는 줄 알겨. 저승가믄 우리 영감탱이가 경치게 생겼네.”
아낙네들의 자리에서 키들키들 웃음이 퍼졌다.
“제상도 산 사람 먹자고 차린다고 황천객일랑 잊어버리고 팔자부터 고치는 게 어떤가?”
거지 행색의 늙은이 하나가 난데없이 아낙들 턱 밑에 바싹 깎은 까까머릴 들이밀고 수작을 걸어왔다. 그 바람에 아낙들의 수다스러운 잡담이 뚝 그쳤다.
더운 공기가 꽉 들어찬 선술집은 파리 떼들만 윙윙댈 뿐 이상한 침묵 속에 가라앉았다.
“아따, 저 써글 놈이 터진 주뎅이라고 염병을 해쌌네. 몸뚱이 쌩쌩한 것이 일도 안 허고 남의 집서 술찌갱이나 빌어 묵음시로 뭐허는 짓거리여?”
부엌에서 주인노파가 쫓아 나오며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그 까까머리 늙은이도 지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내가 빌어먹긴 뭘 빌어먹었다고 그래! 외상 밥을 먹었어, 그렇다고 공술을 마셨어? 어차피 버릴 술찌끼 먹어준 것만도 고맙지."
“워매, 저 작것 좀 보소. 동냥치가 무신 벼슬이라도 된다냐? 니 꼬라지 보먼 갑갑시런께 애징간히 씨부리고 가만 앉어 있어야.”
이번에는 악까지 받쳐서 주인 노파가 버쩍 마른 주먹을 쥐고 마구 흔들어 댔다.
까까머리 동냥아치는 금세 꽁무니를 빼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면서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늙은 것도 서러운데 돈 없다고 이런 괄시를 다 받는다며 꿍얼꿍얼 푸념을 늘어놓았다.
“저눔아 자슥, 저기 무신 꼬라지고? 와 다 늙어감서 허리 꾸부리고 청승시럽게 돈타령이고. 살아갈라캐도 돈 없으문 몬살고 죽는다캐도 돈인기라. 참 얄궂데이. 암만캐도 니는 저승도 못가지 싶다.”
까까머리 동냥아치의 하는 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양복쟁이가 쯧 혀를 찼다. 이 말을 들은 주인 노파는 다시 화가 끓는지 까까머리 동냥아치를 향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저 써글 놈이, 귀구녕이 맥혔냐? 오늘 저녁에 굴러댕기는 동태 눈깔 한나라도 얻어 처묵을라먼 알아서 거시기하랑께! 뒷간에 대가리 처박고 뒤질 놈아.”
입으로 헛기운을 빼고 있는 주인노파를 보다 못해 양복쟁이가 참견하고 나섰다.
“할매요, 고마 신경끄라 마. 그라고 빌어묵는 거는 놔두는기 속편타. 사람자식이 피죽을 묵어도 지 밥값은 떳떳시리 지가 하는기라. 얻어묵고 댕기는 거는 어디도 못쓴다. 신경끄고 일로 와가 탁배기 한잔 마시바라.”
머쓱해진 노파는 양복쟁이가 부어주는 막걸리를 쭉 들이켰다. 그러고는 빈 사발에 다시 막걸리를 채워 양복쟁이에게 건넸다.
“어서 저런 부앳가심이 기어들어왔능가 모르것그마 잉. 한데서 잠을 자고 댕기는 놈이 짠 해 싸서 배때기 따땃허니 먹여농께 이라고 한나잘씩 처박혀서 숨겨 논 동태 눈깔이나 후벼 파쌓고, 어쩌고 말하믄 궁시렁거리기나 해 쌓고. 이년 팔자가 서러워서 그런가,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가. 소처럼 뼈 빠지게 일만 허고 이 고생을 한다냐? 워매 참말로, 폭폭혀서 못살것당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