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예 업고 튀어

퀴어 원더풀의 이야기 (3)

by 백고래

작년에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큰 인기를 끌었다. 아이돌의 자살과 타임리프를 엮어낸 이 작품은 마냥 허구적이라기에는, 거짓말 같이 엄혹한 현실에 기반한다. 방영 초기, 너무 민감한 소재를 다룬 것이 아니냐는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이 작품에 뜨겁게 환호했다. 이유는 뭘까?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알 것도 같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응원했던 마음을, 그래서 속상하고 아팠던 마음들을 다시 꺼내본다.


선예가 참 미웠다. 욕도 참 많이 했다. 너무도 중요한 순간에 팀을 멈춰 세운 선예를 원망했다. 멘붕에 빠진 팬들을 달래려 다른 멤버들이 진땀 빼던 순간이 생생하다.


“우리가 여러분한테 일하지 말고 공부하지 말고 투표하고 공방(공개방송) 다니고 그러라고 한 적 있나요?”


선예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예은이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은 곡해되어 매스컴에 실어 날렸다. 그렇게 부지런한 가십들과 열화와 같은 댓글 속에서 선예는 결혼식을 올렸고, 원더걸스의 미국 시장 도전은 막을 내렸다. 그땐 다른 멤버들의 위로도 날카로운 송곳처럼 아프게 날아들었다. 이해 되지 않는 복잡한 논란에 놓인 상황이 짜증나기만 했다.


예은의 말대로 존중할 수 있어야 했다. 당시 원더걸스는 미국 앨범의 10여 곡을 완성한 상태였고(JYP피셜), 징글볼이라는 미국의 대형 콘서트에도 초청 받았다. 하지만 원더걸스는 이 모든 스케줄을 취소해야 했다. 멤버, 관계자, 가족 등 수많은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오랜 시간 선예를 설득했다고 알고 있다. 그래도 돌려지지 않는 선예의 확고한 선택 앞에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아마 ‘존중’이었던 것 같다. 그 뒷면에 남는 씁쓸한 미움 같은 것도 존중과 함께 잠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원더걸스의 성공만을 꿈꿨던 나는 선예가 조금만 더 참아주고 희생해주길 바랐다. 그걸 왜 못 해주냐고 악에 받혀 분노를 쏟았다. 철저히 선예를 체스 말 취급했다. 선예의 개인적인 이야기쯤 내겐 눈감아버리면 그만인 일이었던 것 같다, 달면 단대로 삼키고 쓰면 쓴대로 뱉어내는 그런 일 말이다.


나는 원더걸스를 먼 발치서 대상화하고 채찍질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조롱받는 이 상황을 뒤집어야 한다고, 지금껏 달려온 과정이 아깝지 않냐고. 이건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넌 꼭 네 결점을 채우기 위해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더 모범적이고 더 잘해야 한다고. 왜 꼭 어떤 존재로서 증명 받아야 했나, 왜 어떤 대상으로서 기능하려고 했나, 그냥 있는 그대로 나의 삶과 선예의 삶을 바라보고 포옹해줄 수는 없었나. 있는 그대로의 모든 걸 스스로 존중해줄 수 없었나.




최근 몇년여 간 높은 인지도를 가진 여러 아이돌이 하늘의 별이 되었다. 나는 이들을 생각할 때면 선예가 떠오르곤 한다. 만약 선예가 그때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별이 된 아이돌의 어느 팬이 남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차라리 어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가서 자유롭게 살지, 그렇게라도 살아있지.”


그 말을 듣고는 선예를 떠올렸다. 수많은 가능 세계 중 선예가 살아남는 쪽의 세계를 살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칠 때면,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너와 내가 같이 사는 구사일생의 선택을 선예가 내린 것이라고, 24살의 나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내이자 엄마가 되는 선택은 스스로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선예를 이해하며 그 시절의 감정을 갈무리했다. 얼마나 힘든 마음을 짊어지고 있었던 걸까, 그 누구도 모르겠지. 감히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별이 되었든 지상에 남았든, 말 없는 그들을 말 없이 바라볼 수 밖에. 먹먹한 슬픔만 덩그러니 남아 그 공백을 울린다.


“누군가 내 얘길 들어준다면, 누구보다도 난 행복한 걸”
- <Wishing on a star>, 원더걸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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