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日
엄마.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단 한 사람. 생각만 하면 어김없이 감정이 북받쳐 눈물부터 난다. 엄마라는 존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나의 가장 확실하면서 먼 과거는 엄마의 뱃속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기는 불확실하다. 그러므로 나의 근원은 나의 엄마다. 엄마가 빚어내어 고통을 통해 나를 낳았다. 내게는 태어나면서부터 고통을 주었다는 원죄가 있기에 엄마를 생각하면 미소보다는 눈물이 먼저 난다. 제 혼자 잘났다는 사춘기가 되어, 엄마에게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모르지 않았다. 당신을 뛰어넘지는 못할 거라고.
넘지 못한다는 걸 알고서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경쟁할 형제자매도 없었는데 하나하나 모두 잘해서 인정을 받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인정이랄 것도 없이 자식이란, 존재 자체가 감사라는 걸. 그래도 늘 바빴던 엄마가 내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를 바랐고, 쉴 수 있는 시간에 온전히 본인만을 위해 쉴 수 있기를 바랐다.
엄마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싶었다. 나의 성과는 엄마의 훈장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바빠서 챙기지 못하는 아이라는 말이 죽어도 듣기 싫었다. ’ 딸이 워낙 잘해서 엄마가 정말 좋으시겠어요.’ , ‘호호, 제가 해주는 게 없는데 알아서 잘해주니 제가 너무 고맙죠.’는 내가 설정해둔 엄마와 누군가의 모범적 대화 시나리오였다. 엄마의 진실 반, 허세 반의 대화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애틋하다고 해서 살가운 딸은 아니다. 위에 적은 대로 인정받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어리광이나 엄살은 감추는 게 나았다. 몸도, 마음도 아픈 것을 잘 참았다. 어쩌면 이것도 엄마를 지키기 위한 나의 방편이었는지도. 엄마의 세계를 이해하고 지지했고,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내게 종종 서운해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짐을 나눠지자고 말하기보다는 거리를 조금 두는 편이 편하다.
아주 오랜만에 엄마의 공연을 보러 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는 엄마를 보며 내가 해온 일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 내리사랑만은 아니다. 자식도 부모의 성장을 바라고 돕는다. 부모의 형상을 빚어 고통으로 지킨다. 거기에 조건 없는 사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