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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Aug 26. 2021

회오리 감자로 지구를 얘기할 때

반려의 기준



3日






한 손에는 아이스 차이 티 라떼, 다른 한 손에는 회오리 감자.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회오리 감자 고놈 참, 이름처럼 생겼네. 동그란 감자의 단면이 좍- 펼쳐진 걸 보니 맥락 없이 켜켜이 층이 나눠진 지구가 떠오른다. 지구를 이렇게 나누면 여기쯤이 핵인가? 옆에서 남편은 내 머릿 속도 모르고 받아 든 회오리를 집어삼키고 있다. 보통 남편과 있을 때 밑도 끝도 없이 꺼내는 주제는, 이성적인 이공계 남편에게 철저히 인문계인 나의 과학적 판타지를 검증받는 쪽으로 흘러가곤 한다.


 

“오빠, 지구 반지름이 얼마나 되지?”

“6000-7000 킬로 정도 될 걸.”



“에게게- 그 정도 거리면 비행기로도 한나절이면 가는 거리인데. 핵까지 안 파봤나?”

“물리적 기계라면 핵에 닿기도 전에 기계가 망가지지. 지금 기술로는.”



“지구는 영원히 중력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 포에버?”

“그것도 아무도 모르지. 과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할지도.”



“그 핵의 중력이 조금 약해질 수도 있을까? 만약에 사람들이 나중에 기술로 가능해져서 지구를 아주 깊이 파봤는데 공교롭게도 중력이 약해진 곳이면 땅 속에서 용암이 막 솟구칠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겠지. 용암뿐만 아니라 재앙이 오겠지.”

“오, 집에 가서 혹시 그런 영화 있나 찾아보자.”



핑퐁 랠리처럼 끊임없이 문답, 문답, 문답을 반복하는 재미에 폭 빠져있는 사이, 회오리 감자 파는 아저씨가 감자 꼬챙이를 팔팔 끓는 기름통에 아래 위로 넣었다 뺐다 하면서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속으로 ‘참 허무맹랑한 소리들 하고 있네’ 하시려나. 오늘 우리 대화는 지구의 중력에서 작용 반작용을 거쳐서 아파트 한 층이 버텨야 하는 하중을 어떻게 계산하나까지 다다랐다. 그쯤 되니 대화의 안주거리였던 회오리 감자의 마지막 회오리마저 내 식도에 진입했다. 아쉽지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겠다. 아, 더없이 좋은 대화였다. 작게 유용하고 크게 실없는.



우리는 연애도 이런 대화로 시작했었다. 과학. 종교. 정치. 경제. 예술... 세상의 모든 분야를 전문가가 아니어도 각자의 개똥철학으로 읊어댔다.



“나쁜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무병장수하는 세상이 가능한 거지? “

“내 생각에 오빠의 그 의문에 가장 합리적인 답은 불교의 연기론인 것 같아. 그게 뭐냐면…”



그러고는 연기론에 대해 선무당이 일장연설을 하고 있는 거다. 남편이 된 남친은 또 지겨워하지도 않고 까닭 없이 흔드는 닭머리처럼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 반론을 하고 나는 또 방어를 하는 식이다. 그러다 책도 펴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다 보면 시간의 상대성을 절감하게 된다. 차 한 잔을 두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해도 아직 시작도 못했다며 돌아가는 길에 주고받는 메시지가 끊이지 않았었다.



사람들에게 이상형을 물으면 흔히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쌍꺼풀이 없고, 180cm 넘어야 한다는 외모와 키에는 명확한 기준을 가졌으면서 대화가 잘 통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뭐냐는 물음에는 두루뭉술하게 ‘그건 대화해보면 느낌이 오죠.’ 한다. 일생일대의 반려를 찾는 일이 Feel에 의존할 영역의 문제이던가? 혹시라도 그렇다면, 참고를 위해 내가 생각하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의 기준을 더해주고 싶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왜냐고 먼저 묻지 않는 사람.



허풍이 가득해도, 아무리 실없어도 행복한 얼굴로 꺼내는 이야기에 ‘그게 , ' 그게 라고 묻지 않고, 함께 기분에 취해 허풍을 떨고, 실없이 웃어주는 사람.



연애 때니까 그렇지, 나중에 변하면 어떡하냐고? 연애 때도 안 해줬는데 결혼하고 해 줄리는 더 없다. 그리고 중요한 건, 나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 내 실없는 말에는 장단을 치라고 강요하면서 상대의 허풍에는 세속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 오들오들 떠는 시늉이라고 해줘야 한다. 그렇게 맞춰주고 사는 사이가 반려이다.



초반에 너무 많이 양보했나, 덜 먹은 듯 회오리 감자의 여운으로 입맛을 다시는데, 골든 리트리버가 반짝이는 연갈색 털 꼬리를 살랑이며 스쳐간다. 우리는 서로 앞다퉈 큰 개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도, 이별이 두려워 아직 식구로 맞이하지 못했다.



“오빠, 우리는 하윤이 어른되고 지 사람 만나서 연애하느라 정신없어지면, 그때 리트리버 키우자. 그때부터 키우면 우리 늙었을 때 개도 늙을 거 아니야. 상상해봐바. 꼬부랑 노부부에 나이 든 개까지 셋이 이런 쇼핑몰에서 아이구 허리야, 아이구 다리야~하면서 쇼핑하는 거. 얼마나 웃겨~ 그러다 힘들면 셋 다 벤치에 앉아서 회오리감자나 사서 나눠먹고. ”



킬킬- 함께 웃으면서 한 손에는 남은 아이스 차이 티 라떼, 다른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은 당신은 앞으로도 내가 상상하자는 대로 상상하고, 궁금한 것도 같이 궁금해해 주겠지. 내가 피스타치오를 먹으면서 이란의 핵실험을 말하고, 제페토에 카페를 차려서 대박을 내겠다고 허풍을 쳐도 지금처럼 같이 열띠게 토론하고, 진심으로 대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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