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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Aug 27. 2021

위험한 직업인의 아내

당신의 밤은 평안하기를



4日






자다가 눈을 떴다. 밖은 여전히 새카맣고 개구리는 왕왕 울어 댄다. 몇 시쯤 됐나... 남편이 밤 촬영을 가면 자주 깨서 옆 자리를 확인하고, 없으면 휴대폰 시계를 본다.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집었는데 화면이 켜지지 않는다. 자기 전에 충전기 꽂는 걸 잊은 거다. 불길하다.



‘휴대폰 꺼진 사이에 무슨 연락이 왔던 건 아니겠지?’



충전기를 꽂아도 바로 켜지지 않는 휴대폰 옆에 눕지도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서, 한 입 깨문 하얀 사과가 뜨기만 하릴없이 기다린다. 이제는 베짱이들도 합세해서 울기 시작한다.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액션 영화와 드라마의 장면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배우들의 위험을 대신 짊어지고 대가를 받는 얼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남편은 스턴트맨이다. 정식 명칭은 무술연기자. 보통 몸만 쓰는 줄 알지만, 액션영상 편집도 하고, CG 작업도 한다.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한국의 무술연기자들은 할리우드에서도 인정을 받는 최고 수준이다.



“난 이 일이 재미없었던 적이 없어.”



일하다 보면 한번쯤은 회의를 느끼지 않는 일이 없을 텐데. 자신 있는 한마디에 그에게 매력을 넘어 존경심을 느꼈다.  안전하게 준비하고 하니 괜찮다고 말해서 마음을 놓고 지냈는데 사고가 발생했다. 차와의 충돌씬이었는데, 와이어가 늦게 잡아당겨져 남편이 그대로 아스팔트에 처박히며 쇄골이 부서져버린 거다. 그날도 그랬다. 전화를 바로 받지 못해서 나중에서야 콜백을 했더니 남편이 별일 아닌  말했다. 쇄골이 조금 다쳐서 병원에 왔노라고. ‘조금이라고 하더니  수술대에 올라갔다. 위험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아내라는 자각이 되었다.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았을 때 가족이라도 그 일의 가치판단을 대신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옭아맬 수는 없다. 존경을 표하던 그 직업 소명을 이제 와서 내버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은 누군가의 위험을 짊어지지만 그때부터 나는 걱정을 짊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는 때 문득, 걱정에 휩싸이면 내 반추 사고는 남편이 쇄골 다치던 날로 데려간다. 좀 더 빨리 전화를 받았다고 나아질 건 없었을 테지만, 언젠가는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칠까 봐 불안하다. 현장의 낮이라고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밤이 되면 상황 판단과 처리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불안함은 좀 더 짙어진다.





사과가 나타났다. 2시 36분. 캐치콜도, 읽지 않은 카톡 메시지도 없다.



‘별일 없겠지?’



일하고 있는데 또 안 자고 있냐고 걱정할까 봐, 메시지는 보내지 못하고 눕는다.





5시. 언제 들어왔는지 남편이 소파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다.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침대 가서 자.”


“아니, 머리 좀 다쳐서 병원 다녀오느라고.


“뭐?!”


“놀라지 좀 마~ 내가 더 놀래.”


“꿰맸어? 엑스레이는? CT는? 다 찍었어? 의사가 뭐래, 괜찮대?”


“크지 않아서 스탠플러로 찍었고, 뼈는 이상없대고. CT는 안 찍었어. 속 메스껍거나 하면 다시 오래. 나 너무 졸려서 좀 더 잘게.”



어둠 속, 그제야 어렴풋이 보이는 머리 위에 허연 밴드. 머리가 닿을까 봐 모로 누워 잠든 남편이 안쓰럽다. 불길함이 기분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되었지만 간밤에 예감으로만 존재할 때보다는 마음이 훨씬 낫다. 두려움은 불확실성에서 나오니까.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처가 생길지도 모르는 아픔보다는 견딜만 하다.



깨어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한다. 어떻게 다쳤냐고는 물어얄텐데, 조심하지, 하지 말지.라고 말하지 말고, 이만해서 다행이야, 누구야, 누가 그렇게 현장을 허술하게 해 놨어. 하고 말해줘야겠다. 이제는 자기의 재미뿐만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위험 앞에 서있음을 알기에 남편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게 그렇게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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