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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Aug 28. 2021

플로우와 아사나의 왕



5日






마스크 사이로 시익-시익-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척추를 곧추 세우고, 천정을 향해 내뻗은 손끝 너머로 시선을 둔다.



나는 플로우를 느끼고 있었다. 3일간의 효소 단식을 하면서 몸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가벼워졌기에 요가 수련을 하는데 최적의  상태가 되었다고 자신했다. 시퀀스 대로 아사나가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일체의 인식이 개입하고 않고, 선생님의 목소리만이 귀에 들어와 춤을 추듯 움직였다. 플랭크 자세와 같은 차투랑가 단디아사나를 하면서 팔에 가득  에너지를 느꼈고, 몸을 뒤로 넘겨 활처럼 만드는 세투반다나사나를  때는 복근들이 몸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전에는 모두 미약했던 근육들이었다. 아사나와 호흡에만 집중하니 몸을 지지하고 있는 지면의 단단함 만이 느껴질 ,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함께 수련하는지 의식되지 않았다. 아쉬탕가 요가는 아름답고 경이롭다.



“요가는 우리가 플로우라고 알고 있는 심리 상태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며, 심리 에너지를 통제하고자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유용한 모델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중략) 요가의 목적은 먼저 신체의 각 부분이 서로 하나가 되도록 하고, 그렇게 하나가 된 육체와 의식이 함께 질서를 찾아나가는 것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난다.>



플로우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정리한 개념으로, 우리 말로는 완전한 몰입, 하는 일이 너무나 즐거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푹 빠져있는 상태를 뜻한다.



최적 경험이라고도 불리는 플로우는 자신의 의식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우리의 의식은 현실을 매우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서 의도적으로 순서화(위계화) 시킨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은 의도를 가지고 현실을 인식하고 의도의 우선순위대로 삶의 가치들을 줄 세운다. 이러한 위계에 따라 내면에는 질서가 생겨나고, 질서를 만들어낸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된 느낌이 드는 그 순간! 플로우가 찾아온다.(고 한다.)



인간은 신체가 없이는 어떠한 경험도 할 수 없기에, 정신을 일깨우는 명상도 중요하지만 내 몸 사용설명서를 잘 익혀두고 자유자재로 몸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신체활동이 필요하다. 20대 초반,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보다 그저 내가 얼마나 아사나를 잘 해내는지에 대해 신경 썼다. 당시에는 유연성과 근력이 있는 편이라 그럭저럭 난이도가 있는 자세도 잘 해내었는데 수련의 척도가 남에게 있다 보니 일정 수준 이상 나아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점점 흥미가 떨어졌고, 자세를 잠시 멈추는 그 몇 초 동안 가슴이 답답해 터질 듯이 괴롭기만 했다. 그러고는 ‘나는 요가가 안 맞더라고.’라는 핑계로 아주 오랫동안 거리를 두고 살았다.



몸에서 이상반응이 하나씩 시작하는 지금에서야 남을 따라 하기도 어렵거니와, 남과 비교하는 수련이 의미가 없다고 깨달았다. 다시 들어선 수련장에서는 되도록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양하고, 나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플로우는 구조화된 활동을 하면서 개인의 능력을 키워나갈 때 주로 일어난다. 도전의 난이도보다 능력이 높다면 지루하게 느껴지고, 능력보다 과제가 너무 어렵다면 불안하다. 요가의 시퀀스는 단계별로 정교하게 고안되어 있어서 자신의 능력보다 항상 ‘조금’씩 앞선 목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동기를 부여하며 즐거운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한다. 비교의 대상을 어제 보다 나은 나에 초점을 두니, 나의 몸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도전의 목표치를 정하고, 기술을 단련하는 몫은 오롯이 내 몫이다. 그것부터 즐겁다. 선생님은 가이드이자 페이스 메이커이지만 아사나를 다듬고, 숨을 들이마시고, 숨은 내쉬는 건 결국 내가 하는 일. 요즘 나의 과제는 아사나의 왕이라고 불리는 시르사 아사나(머리로 서기)이다.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플로우 상태를 경험했기에 이것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무릎을 꿇고 앉아 나무뿌리처럼 머리를 단단히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들어 올린다. 얼굴 쪽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다 무릎이 배에 닿을 듯 가까워지자 엄지발가락이 바닥에서 떨어질 준비가 되었는지 들썩인다. 오른 무릎을 띄워 접고, 숨을 고르고 왼 무릎을 띄워 접는다. 이제부터는 코어의 힘이 관건이다. 접은 다리를 펴면서 4시, 3시, 2시, 1시.. 그리고 12시.. 드디어 정점에 닿았다. 됐다!




쿵--!



수련장을 가득 채우는 큰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린다. ‘됐다!’ 그 ‘의식’의 순간이 문제였다. 집중이 흐트러지며 몸이 뒤로 넘어가버렸다. 준비가 다 된 줄 알았는데.. 잡고 있던 코어에 힘을 놓쳐버렸다. 눈을 감고, 다리가 올라가던 순간을 복기한다. ‘해냈다. 성공했다.’라고 평가를 하자마자, 여지없이 자세는 무너져버린다. 완성하는 지점은 다리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가 아닌데.



선생님은 잠시 누워 쉬라고 하셨고, 나는 들숨과 날숨으로 온몸의 긴장을 내려놓는다. 너무 순식간이라 그대로 허리로 떨어졌더니 미세하게 통증이 느껴진다.



“각자의 수련이 있어요.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 몸에 맞춰서 진행하세요.”



오늘은 실패했지만, 실실 웃음이 난다. 통증이 느껴지는 신경이 활력이 되어 온몸을 휘감는다. 플로우는 현재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나만의 수련에 도전을 하고 있기에. 내일은 오늘보다 더 준비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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