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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Aug 29. 2021

17년 전 오늘,



6日






2004년 8월 29일

17년 전 오늘, 경남 사천의 절에 들어갔다.


그 해 초 40여 일간의 인도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대학 3학년 1학기를 학업과 공연의상 아르바이트로 눈코 뜰 새 없이 보냈다. ‘탈진 증후군’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맡고 나서 이름처럼 번아웃이 돼버렸다. 서울의 번화가 중심에 살던 나는 도저히 눈과 귀를 쉬게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 인도 불교의 성지 보드가야에서 보았던 보리수나무 심상이 머릿속에 쑤욱-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머리를 깎을 생각은 없었다.



불교신자도 아니면서 어디서 용기가 샘솟았는지 인터넷 불교 커뮤니티에 나를 받아줄 곳을 찾는다는 글을 올렸을 때, 학생의 간곡한 글에 화답해주신 스님이 계셨다. 멀지만 괜찮다면 와도 좋다고. 바다 건너 인도의 시시콜콜한 작은 마을도 악착같이 찾아다녔으면서 정작 한국에 태어나서 한 번도 밟아볼 생각을 못해본, 외국보다 낯선 경상도의 한 소도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은 놀라운 역사의 한 자락을 쥐고 있는 명 사찰이었다.

진신사리를 모신 부처가 누워계신 곳이었고, 만해 한용운이 독립운동을 하다가 은신했던 곳이었으며, 이 절의 작은 방에서 김동리 작가가 <등신불>을 탈고했다. 그야말로 비범한 절이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주변에서 ‘이건 알지?’ 하는데 그냥 눈만 꿈뻑꿈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차문화를 중흥시킨 효당 최범술 선생이 반야차라는 이름의 야생차를 만들었던 곳. 운명처럼 차를 만나 지금껏 나를 지독한 차충(茶蟲)으로 만든 사찰, 다솔사.



갈 때까지 이름도 모르던 절은 이제 고향이 되었다.

태어나고 자란 곳 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리운 곳이 고향이다. 차를 우리면서 다솔사의 새벽을 추억한다. 오늘의 창 밖에서는 촉촉하지만 낮게 가라앉은 밀도 있는 풀내음, 물이 살짝 고인 디딤돌의 이끼 냄새…새벽 예불을 드리러 갈 때 맡던 그날의 냄새가 난다.






스님, 감사합니다.



몇 안 되는 옷가지와 책이 든 가방에 이부자리 한 채뿐이었지만, 지내던 작은 방은 제게 더없는 피안처였습니다. 알고 있어요. 사연 모르는 여학생에게 밤 중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 한 번씩 지나가시며 제 그림자로 안녕을 확인하셨던 거요. 창호문 밖에서 작은 기침 하시며 책 쉬엄쉬엄 읽고 새벽예불은 안 나와 되니 편하게 지내라고 하셨지만, 다솔사의 그 새벽 시간이 저를 치유했습니다. 근 1년, 그때처럼 새벽을 밝히고 있어요. 그곳 생각이 자주 납니다.



스무   만에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렸을 , 아쉬움 가득하게 ‘그래도 이곳에 오길 잘했지? 언제든 다시 와도 좋다.‘ 하시던 목소리가 기억납니다. 비빌 언덕 하나 생기듯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여태컷  배은망덕한 녀석은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했네요.



고요함 속, 새벽마다 스님이 우려 주시던 차 한 잔이 인생의 커다란 점이 되었습니다. 서울에 돌아와 차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점을 찍고, 런던으로 가 그 나라의 차를 만나 또 하나의 점을 찍고, 그렇게 점을 찍고 찍다 보니, 점이 모여 길이 되고 길 위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참 많이도 만났습니다. 이제는 차가 제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었어요.



스님이 우려 주시던 그날의 차 한 잔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시절 인연이 된다면 그때는 제가 우린 뜨끈한 차 한 잔으로 마주하고 싶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어서 참 좋습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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