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할 수 없었던 스님의 질문
템플스테이 둘째 날. 아침에 스님과의 참선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5시 5분 전. 템플스테이 참여자들이 한 방에 모여 빙 둘러앉았다. 무엇이든 첫 경험은 설레는 법. 참선 시간에는 대체 뭘 하는 걸까 궁금해하며 멀뚱멀뚱 스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확히 5시 정각에 스님이 나타나시며 자연스럽게 명상이 시작되었다. 평상시 한 자리에 진득이 앉아 명상을 하던 사람이 아니다 보니 5분만 지나도 찌릿찌릿 다리가 어찌나 저리던지. 그러나 그 저림조차 귀중한 추억이 되는 것이 템플스테이의 매력이다.
나와 주변 사람들의 숨소리만 들리던 고요한 시간이 지나고 스님은 가벼운 인사를 나누시고는, 곧장 우리를 혼란 속으로 빠뜨린 단 하나의 질문을 던지셨다.
스님과의 참선 시간에는
단 한 가지를 물어볼 거예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그 하나의 질문은 점차 스님과 가까이 앉은 순서대로 한 명 한 명에게로 향했다. 이름을 답한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이름이 아니면 당신은 당신이 아니게 되나요?"라는 질문이 되돌아왔고, 사는 곳을 말한 어떤 사람에게는 "거기에 살지 않으면 당신은 다른 사람인가요?"라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던져졌다. 부모님의 이름, 가족 구성원, 졸업한 학교, 직장 이름과 같이 우리의 소속을 표현하는 말도,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와 같은 기억에 관련된 말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과 같은 취향을 설명하는 말까지, 그 어떤 것도 스님이 의도하신 답이 아니었다. 점점 참선실에 영문 모를 침묵만이 공중을 떠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돌아온 내 차례.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계속 고민하다 입 밖으로 꺼낸 말은 "호흡"이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는 호흡 그 자체입니다." 지금 숨 쉬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내가 아닐 수 없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던진 내 답은 또 스님의 말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럼 지금 호흡을 참고 숨을 쉬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이 아닙니까?" 이쯤 되면 말장난인가 싶어 말문이 막혔다. 대체 우리와 뭘 하고 싶으신 거지 스님은?
그렇게 마지막 주자까지 돌아간 끝이 없는 '누구' 찾기 릴레이는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그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만을 알려준 채로. 어안 벙벙한 우리들을 앞에 두고 스님이 하신 말은 지금도 잊지 못할 깊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그 무엇도 아닐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어요.
앞으로도 일상에서 이 질문을 계속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문득 학창 시절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던 '무아(無我)'사상이 기억났다. 만물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고 하는 불교의 교리. 스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것이다. 아니, 느끼게 해주고자 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무아사상'이라고 아무리 읽고, 시험 문제를 아무리 풀었더라도, 오늘의 이 질문처럼 강렬하게 나를 자극하지는 못했으리라. 덕분에 '무아'라는 말은 두고두고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부분들 또한 어쩌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은 나 또한 세상만물의 일부이며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나'를 찾는 여행을. 지금껏 살아온 삶의 패턴이 아닌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나아가는 '나'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스님이 주신 그 무엇보다 귀중한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