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맞서다. "그건 농담이 아니야."

"필요하면 같이 행동할게."라는 말이 준 용기

by 청두유

인종차별 관련 지난 포스팅과 내용이 이어집니다("농담"인데 당사자는 불쾌한 차별 편).


최근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영국 할아버지는 숨겨진 인종차별주의자(hidden racist)이다. 인종차별이 섞인 농담을 하며 유독 나에게만 신체적 접촉을 시도하는 것이 불편했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30여 년 간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무기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 무기는 바로 불편한 감정을 불편하다고 말하기였다. 이 감정이 정말 정당한지 옳은지 등 불필요한 자기 검열을 그만두고 제때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리 소리 내어 말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신체적 접촉이 불편하니까 삼가 줬으면 좋겠어.”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도 저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최대한 그를 피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일찍, 그것도 갑작스럽게 기회는 찾아왔다.



남자친구와 이른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다가와 내 어깨를 또 살짝 만지면서 "내 컵도 설거지해 줄 거니?"라고 물었다. 장전해 둔 총을 사용할 겨를도 없이 그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What?”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고, 남자친구는 그에게 "왜 레이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야?"라고 물었다.


"왜냐면 레이나는 여자애니까.”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남자친구와 심각한 표정으로 응시하자, 그는 내 표정이 우습다는 듯 내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며 과장되게 웃으며 “그냥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말했다.

손에 들고 있던 그릇에 묻은 거품기를 물로 닦아내며 설거지는 제대로 마치자고 다짐했다. 고무장갑을 벗으며 뜨겁게 출렁거리는 분노를 참으며,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건 농담이 아니야 (It’s not a joke).”


남자친구는 그에게 이런 말은 어떤 상황에서든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이야기이며, 신체적 접촉도 불편하니 삼가 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은 Sexist도 Racist도 아니며 그런 의도가 전혀 없이 본인은 원래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This is who I am)이라고 말했다. 이곳 출신인 다른 플랫 메이트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겠냐고 묻자, 그는 횡설수설하며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더 또박또박 제대로 말하고 싶었다. “지금 그 발언은 성차별이자 성희롱이야. 내가 아시안 여성이라고 무시하는 인종차별도 느껴져서 굉장히 불편해.”라고.


“그건 농담이 아니야.” 그 한마디 내뱉는 것조차 입이 쇠사슬로 꽁꽁 묶인 듯 어려웠다. 남자친구는 생각보다 많이 얼어버린 내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할 줄 알았는데, 의사 표현을 해준 덕분에 본인이 나설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며 칭찬해주었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상황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준 사람들의 역할도 컸다. 평소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플랫 메이트 커플에게 고충을 이야기했더니 그들은 내 언짢은 기분에 공감해주면서 나와 눈을 마주치며 필요하면 같이 목소리를 내주겠다고 말했다.


“그건 잘못된 일이야. 그 사람 또라이야.”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나도 같이 행동할게.”라는 말은 달랐다. 이 셰어하우스에서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했고 뒤에 더 많은 지지자들이 지켜본다는 생각으로 더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100명의 인종차별 주의자가 있는 사회일지라도 단 한 명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함께 해준다면 그곳은 따뜻하고 꽤 살만한 사회로 기억될 수 있다.


KakaoTalk_20210429_071344702_01.jpg 자세히 보면 곳곳에 예쁜 봄이 왔어요. 이곳은 꽤 예쁜 곳이랍니다. (photo by reina)



이 곳에서도 아시안 혐오는 일어나고 있다.

어떤 행동이 혐오이자 차별인지 이야기하고 이를 멈춰 달라고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어찌 보면 차별과 무관한 사람들도 함께 그 행동이 옳지 않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나 살기도 바쁜데 다른이들을 위해 애써 무언가를 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 삶의 팍팍함과 치열함을 핑계로 아무 말 없이 스쳐 지가나는 일은 쉽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집단에 복합적으로 속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누구나 살면서 다수에 속하기도 하고 소수에 속하기도 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다소 이득을 취하는 주류 및 기득권이 되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부분에서는 무력한 소외 계층이 되기도 한다.


아시안 혐오는 그냥 단순한 인종 차별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약한 소수 집단에 대한 차별이자 공격이다. 차별은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바꾼 채 이미 우리 주변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각종 차별들을 그저 ‘누군가 어딘가에서 겪었다’라는 소문 정도로, 검지 손가락 하나 위아래로 움직이며 빠르게 읽고 넘기는 뉴스거리 정도로 치부한다면 정작 우리가 그 대상이 되었을 때에는 누가 도와줄 수 있을까?


“연대”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요즘, 진정한 연대는 비슷한 고충을 겪는 사람들과의 연결만이 아니라,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모든 사람들과의 연결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건 웃어넘길 일이 아니야. 잘못된 일이야."라고 함께 행동하는 용기. 그 용기가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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