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공부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영국에서 석사 공부하는 유학생활 에세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지난 3개월 동안 온라인 화상 수업에 대한 이야기 한번 하고 글에서 공부라고는 털끝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고, 이렇게 말하면 양심이 찔리니 두 번째 이유로는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된 공부가 어렵다고 말하고 싶고, 세 번째는 공부를 하면서 성취한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영어 콤플렉스에 영어 울렁증까지 갖고 있던 그녀는 외국에서 공부를 안 해봐서 그렇다는 평생의 "자격지심"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회사에 다니면서 없는 시간 쪼개가며 주말을 반납해가며 자기소개서와 연구계획서를 제출하고 아이엘츠 시험도 통과하여 영국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라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좁디좁은 방에서 화상 수업으로 공부를 했지만 그런 환경에 영향받을 그녀가 아니었다. 교수님께서 올려주시는 수업 자료를 꼼꼼히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요, 매주마다 이렇게 열 권씩 추천해주는데 이걸 다 읽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한 참고 도서 목록에서 최소한 한 권씩은 읽으며 지식을 넓혀 갔더랬다. 모국어로 에세이 쓰라고 해도 힘들 텐데 영어로 과제를 하려니 답답함과 속상함에 폭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쌓인 내공으로 과제에 성실히 임하다 보니, 논문을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에세이를 쓰는 실력도 일취월장하면서 결국 그녀는 해냈다. Distinction과 Merit를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런 이야기는 그녀에게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적은 양의 논문을 읽으면서 인용문을 찾는 법을 익혔고, 지금도 어떻게 하면 더 적게 읽을 수 있을까 열심히 고민하고 있다.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고 에세이로 풀어내는 연습을 하는 대신 어떻게든 최대한 관심 있는 주제와 엮어서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하는 꼼수를 익혔다. 과제 관련 설명문이 올라오면 제일 먼저 글자 수를 확인하고 5% 내외를 계산해서 처음부터 최소한의 글자 수만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두들 그녀에게 회사 다니는 것보다 공부가 훨씬 재밌고 좋지 않냐고 물었다. 그 말에 그녀는 양심이 찔렸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데, 공부에 푹 빠져서 이것저것 탐구하며 1년이라는 시간과 들인 비용이 아깝지 않게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언뜻 정답 같은 그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솔직한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회사를 안 다니는 게 좋은 거지 그렇다고 또 공부가 좋지도 않다고.
그녀는 평생 공부를 좋아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잘하는 게 좋다고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좋다고들 하니 하루 종일 공부를 했다. 예체능 내신 성적조차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밤마다 줄넘기 연습, 농구 연습에 단소 연습까지 했었다. 다들 공부만 해야 될 시기라고 말했고, 공부가 딱히 싫은 것도 아니었기에 무작정 계속 공부를 했다.
원하는 대학에 가고 나니 중간고사, 기말고사 있었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그녀의 생일 (6월이라서)의 숨은 의미는 기말고사. 그렇게 16번의 시험을 보내고 취업을 했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공부를 하지 않는 삶이 어색했다. 일은 일이고, 공부는 공부였다. 회사에서 새벽까지 일을 하며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다 상했지만 왠지 부족한 느낌이었다. 방송통신대학교를 등록해서 주말이면 영문학과 미디어 공부를 병행했다. 언제나 “이거 해야 해.” “이거 끝내야 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랬던 그녀는 지금 영국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뭘 하며 지내는 걸까.
매일 아침 일어나서 글을 쓰고 하루 일과에 숨어 있는 글감들을 찾아낸다. 매일 삼시세끼 요리를 하면서 비건 김치의 장인이 되었다. 쪽파도 키우고 무순도 키우고 콩나물도 키운다. 남자친구와 수다를 떨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한중일 그리고 미국이 뉴스의 전부이자 세상의 전부였던 그녀는 이제 중동의 역사, 터키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회사를 좋아하지 않으면 공부를 좋아해야 할 것 같았다.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돈을 벌거나 공부를 더 했으니 그게 당연했다. 회사 다니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싫은 그녀는 이제야 자신을 인정했다. 그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