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편이 몇 번을 취소되고 변경되고 나서야 10월 초 영국 뉴캐슬 어폰타인에 겨우 도착했다.
떠나기 하루 전, 근처 대학교 학생 7,000명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던 터라 마음 놓고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같은 학과 학생들을 마주칠 일이 없었고 식당이나 까페에 가는 것도 꺼려져서 모든 식사를 집에서 해결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수업 듣고 요리를 만들다 보면 한마디도 안하고 하루가 그냥 지나가기도 했다.
온라인 세계에서나마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나는, 한국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나름의 과감한 도전을 했다.
Tinder를 다운 받아서 시작한 것이다. Tinder는 서양에서 많이 사용하는 데이팅 어플리케이션 중 하나로 이름, 나이, 관심사와 간단한 자기 소개 및 사진을 올려두면 GPS를 기반으로 데이트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화면에 뜬다. 마치 이상형 월드컵을 하듯 온라인 쇼핑을 하듯 상대가 맘에 들면 오른쪽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왼쪽으로 화면을 밀어주면 된다(Swipe라고 한다.). 그러다가 매칭이 되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기 전부터 온갖 걱정에 마음이 쿵쾅쿵쾅 거렸다.
Tinder의 위험성에 대해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성희롱이나 욕설, 비하 등의 언행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사례는 매우 흔했고, 매칭이 되어 직접 만나 보니 사진과 전혀 다른, 포토샵 수준이 아니라 범죄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아예 딴 사람이 나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들었다.
이상한 사람이 성희롱 하면 어떡하지? 대화하다가 괜찮은 사람인줄 알고 만났는데, 나 납치라도 하면 어떡해? 만났다가 괜히 코로나 걸려서 타지에서 고생하면 어떡해? 하는 걱정들이 폭풍처럼 밀려왔지만 어느새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것 외에 Yellow Fever, 즉 아시아 여성에 대한 과한 성적인 관심을 가진 사람을 걸러내는 것도 중요한 주의사항 중 하나였다. 한국인 평균 기준으로 내 키나 체구가 절대 작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고 귀여운 동양 여자애 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원나잇이나 훅업 문화가 만연한 서양에서 아시아 여성과 어떻게 한번 뭐라도 해보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을 거르기 위해 애썼다.
일단 사진을 보면서 과하게 근육질 몸이나 국적을 자랑하는 사람은 걸렀고, 대화를 시작한 후에 I like Asian girl 또는 Tiny and cute Asian girl 등의 표현을 하거나, 다짜고짜 만남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천천히 대화를 종료했다.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고를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거지, 단순히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은 목적이 아니었기에 대화창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 사람들을 선별했다.
그러던 중 조금 느낌이 다른 사람을 만났다. 섣불리 외모를 칭찬하거나 아는 척 하지 않고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는 사람. 한창 나의 관심사인 페미니즘 및 비건 그리고 그의 직업과 관련된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알아가고 싶다는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직접 만나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직접 만나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으레 다른 틴더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낯선이와의 성급한 만남이 꺼려진다는 이유로 만남을 유보한 나에게 그는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계속 연락을 했다. 여전히 낯선 누군가를 직접 만난다는게 무서웠지만, 편견과 두려움으로 피하기만 하다가 소중한 인연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서 피크닉을 하고 싶어서 법랑 도시락을 산 이야기를 하다가, 어쩌면 지금이 용기를 내볼 타이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누군가와 함께 해안가를 따라 걷기를 좋아한다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이번 주말에 뭐할꺼야?”
대부분의 약속장소는 이 곳. Grey Monument에요. photo by Reina (Nicon FM3A, Kodak color plus 200)
그렇게 우리는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뉴캐슬 만남의 광장인 grey monument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Monument에 다가가는 한 걸음마다, 나는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왜 만나자고 했지? 그냥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아니면 그냥 잠수 탈까?” 를 끊임 없이 외쳤다. 친구에게 미리 내가 1시간 안에 연락이 없으면 무조건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도 해두었다. 아예 다른 사람이 나오면 신고를 해야하나 머리 속으로 시나리오를 쓰다가 약속 장소에 서있는 그를 발견했다.
다행히 그는 사진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해안가인 타인 머스로 가는 지하철에서 30분 동안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긴장을 심하게 한 탓일까, 나는 묻는 질문에도 단답형 외에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타인 머스 해안가를 따라서 약 4시간을 계속 걸었는데, 영국 생활, 소소한 취미들, 그리고 생소한 나라 터키에 대한 이야기까지 쉴새 없이 이야기 하는 그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대화는 즐거웠다.
여전히 긴장한 나에게, 본인은 숨기고 있는 다른 의도가 없으며 이 만남은 정말 캐주얼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캐주얼한 (캐주얼을 여러 번 강조하며 부담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데이트라고 말해주는 그의 사소한 배려가 고마웠다.
데이트가 끝나고 친구들에게 무사 귀환 메시지를 보냈다.
“장기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어. 그리고 왠지.. 더 만나게 될 것 같아.”
가보고 싶었던 전시회에도 가고, 고양이 관련 다큐멘터리도 보며 몇 번을 더 만나면서, 서로 사회, 가족 및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잘 맞고, 다른 부분마저도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2차 락다운이 시작될 무렵, 우리는 비건 라자냐를 만들어 먹으며 진지하게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BalticCentre for ContemporaryArt, 좋아하는 미술관에서 보냈던 시간들.
그럼에도 한동안 여러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어쩌면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은 아닌지,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것 아닌지 하는 의심이 마음 속에 툭툭 튀어 올랐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에 서툴러서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둔 친절함 만을 베풀던 내가 심지어 아예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을까? 국제 커플은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 서로 희생해야 하는 순간들도 찾아온다는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나의 근본적인 관계 맺음에 대해서도 끊임 없이 의문을 갖고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김없이 그에게 질문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고 마음이 편해질 수 있었다.
실제로 Tinder는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플랫폼이다. 아이콘도 불꽃 모양으로 서로 마음에 들면 하룻밤을 불태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본인이 단편적이고 “쿨”하고 “핫”한 만남만을 추구하는게 아니라면 만남에 신중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도 하고, 대화를 하면서 감을 잡는 과정도 필요하다. 상대가 나와 다르게 가벼운 의도라는 걸 알고 나서 상처를 받는 사람들도 더러 있고, 그래서 이 어플에 부정적인 사람도 많다.
하지만 직접 부딪히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무서워하기만 하고 상대방을 오해하면 할수록 나에게 찾아올 인연의 가능성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처음 만나기로 했던 그 용기를 이야기한다. 그때 내가 무섭다고 끝까지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함께할 수 없었겠지? 하고.
그리고 우리는 또 이야기 한다. 만남을 거절했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래? 흥칫뿡 하고 네가 포기했다면, 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함께할 수 없었겠지? 하고.
데이팅 어플로, 누구보다 관계에 쿨하지 않은 진지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세이프존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