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과 논비건이 함께하는 아침 식사는?
남자친구와 나는 늑대와 토끼다.
후각이 엄청 발달한 데다가 켄지수, 수영 등 각종 운동을 섭렵해서 운동 신경이 좋은 그는 고기를 정기적으로 꼭 먹어줘야 하는 육식 동물이고, 나는 바람 소리만 나도 귀를 쫑긋 세워 긴장하고 작은 일에도 기뻤다가 슬펐다가 반복하는, 심지어 비건을 지향하는 그야말로 초식 동물이다.
음식은 연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시간을 오래 함께 할수록 어느 순간 연인이 가장 많이 함께 하는 활동이 식사가 되고, 음식은 모든 추억 속에 소금처럼 빠짐없이 콕콕 박히기 때문이다. 육식을 즐기는 남자 친구가 비건인 나를 만나,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들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을 같이 즐길 수 없다는 것이 어느 순간 갈등의 요소가 되진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늑대와 토끼,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살던 우리는 간단한 음식 하나를 계기로 비건이든 아니든 서로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음식이라고 말하기도 살짝 애매한, 오트밀 포리지 덕분이다.
오트밀 포리지는 서양에서 많이 먹는 아침 메뉴로, 납작하게 누른 귀리를 물, 우유 또는 두유 등에 넣고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살짝 끓여서 죽처럼 먹는 음식이다. 통곡물에 해당하여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단백질 함량도 높아 다이어트에도 좋고, 견과류, 말린 과일칩, 과일 등을 토핑으로 올려 다양한 맛과 영양소를 챙길 수 있는 슈퍼 푸드로 알려져 있다.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셰어 하우스에 처음 초대받았던 날, 그는 비건인 나를 배려해 채식주의자인 플랫 메이트 (영국에서는 셰어 하우스에 같이 사는 사람들을 플랫 메이트라 부른다.)의 도움을 받아 오트밀을 준비해 놨다.
요리 경력 15년 차인 그는 처음 만난 날부터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면 언젠가 내가 집에 초대해서 비건 요리해줄게. 내가 요리를 꽤 하거든.”이라고 말하며 싱긋 웃는 그를 보며, 요알못 32년 인생에 드디어 미식의 문이 열리나 싶어 살짝 설렜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늘 아침 식사로 오믈렛이나 베이컨을 먹던 육식 동물이 처음으로 오트밀 포리지를 만들려고 하니, 어떻게 만드는지 감이 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오트밀을 그릇에 담고 냉장고에서 꺼낸 차디찬 두유를 부은 후 수저로 섞어서 식탁으로 가져가는 그를 보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정말 저렇게 먹는다고?!’
오트밀은 시리얼과 비슷하게 생겨서 처음 먹는 사람들이 우유나 두유에 부어서 그냥 먹으려다가 호되게 당하는 음식이다. 차가운 두유에 절대 부드럽게 풀어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종이 박스를 씹는 맛이 난다. 이 말을 할 때마다, 다들 “종이 박스 먹어 봤어? 어떻게 알아?”라고 하지만, 먹는 순간 공감한다. 먹어본 적 없지만 딱 이 맛일 것이라고.
다들 그 맛에 놀라 ‘이거 좀 이상한데? 못 먹겠는데?’ 하고 며칠 버려뒀다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한다며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기를 시도한다. 그 역시 오트밀의 종류에 따라 잘 녹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건 사람이 아니라 염소가 먹어야 된다며 오트밀과 이별을 선언하는 사람들을 더러 봤다.
그가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면 나도 슬쩍 물어봤을 텐데 너무 당당하게 식탁으로 가져가는 모습에, ‘혹시 터키에서는 오트밀을 그냥 두유에 저렇게 말아서 먹나? 자기네 문화인데 내가 못 먹겠다고 하면 예의가 없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잠자코 의자에 천천히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찬 두유에 조금이라도 더 불려야 그나마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최대한 느릿느릿 움직이며 열심히 수저로 오트밀을 휘젓고 있는데, 그가 크게 한 숟갈을 입에 넣는 모습이 보였다. 씹는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의 눈빛이 멍해지는 것을 보며, 그도 이렇게 먹는게 매우 맛없다는 것을 느꼈음을 감지했다. 다행이다. 그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혹시 너 오트밀 포리지 먹어본 적 있어? 이거 맛 어때?”
그 순간 그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퍼지며, 한입 먹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고 실토했다. 비건인 여자친구랑 가끔은 똑같은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이건 정말 못 먹을 맛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으로 함께 먹는 아침 식사인데 그녀가 맛있게 먹는데 (실제로는 먹지 않고 있었지만) 도저히 못 먹을 음식이라고 말하면 상처 받을 것 같아 꾹 참고 ‘이건 영양소다. 이건 적어도 영양소다.’라고 생각하며 씹어 삼키고 있었단다.
먹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는 그의 질문에 혹시 터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스타일은 아닐까 싶어 괜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요리 방법에 딴지 걸고 싶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아침 식사를 맛있고 푸짐하게 먹기로 유명한 터키 사람들이 이렇게 인간이 못 먹을 음식을 먹을 리 없다며, 그리고 둘다 맛을 제대로 느끼는 인간이라서 다행이라며 한참을 웃었다.
그가 나에게 처음으로 선보인 음식인 라자냐도 훌륭했고 지금까지 만들어준 터키 음식, 파스타 등 많은 음식들이 내 입맛을 사로잡았지만, 누군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인상 깊은 음식을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오트밀 포리지라고 대답할 거라고 말했다.
식습관, 음식 취향이 연애에서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래서인지 영국에는 비건 또는 채식주의자들끼리 만날 수 있는 데이팅 앱도 있고, 나 역시 그 어플로 사람을 만나야 하나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문화 차이일까봐 절대 못 먹겠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 비건인 연인과 같은 아침 메뉴를 즐기고 싶어서 자기 암시를 걸며 종이 박스 같은 오트밀을 열심히 씹었던 그의 마음.
서로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각자 살아온 문화와 선택한 가치관을 존중해주고 싶은 그 배려심이라면 우리만의 음식 취향, 음식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
요즘 나보다 더 오트밀 포리지를 좋아하게 된 그는 오늘도 으깬 바나나를 활용한 바나나 오트밀 포리지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