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메이트가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다.
남자친구와 사귀자마자 영국에서는 2차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말로만 듣던 락다운을 처음으로 겪게 되니 사뭇 긴장되어 락다운 선배인 남자친구에게 지난 락다운에 대해 물었다.
작년 봄, 갑자기 선포된 락다운으로 나라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두세 시간씩 줄을 서야 겨우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고 심지어 어렵게 들어가서 텅 빈 식품 코너와 휴지 코너를 마주해야 했던 그 시기를 겪어낸 남자친구는 여유로웠다. 적어도 이번에는 필요할 때 언제든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고, 연인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고 얼마나 다행이냐며 서로를 다독였다.
사귀고 정확히 일주일이 되던 날, 남자친구 집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메시지 한통을 받았다. 셰어하우스에 사는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채팅방에 플랫 메이트 한 명이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확인하는 그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집 떠나 타지 살이 중인 우리는 서로 핸드폰을 확인하면서 조금이라도 표정이 심각해지면 혹시 집에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닌지 걱정부터 든다. 마음을 가다듬고 손을 꼭 잡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래층에 사는 토니가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와서 여기 사람들 다 2주 동안 자가 격리해야 한대.”
“양성 반응? 토니 아파? 혼자 밥은 어떻게 해결해?”
타지에서 혼자 아프면 서러운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유학생은 스치듯 인사만 나눈 플랫 메이트의 식사가 먼저 걱정되었다. 아플 때는 잘 먹는게 중요하니까. 검사 결과가 양성이긴 하지만 다행히 특별한 증세도, 아픈 곳도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이 되면서 우리가 처한, 앞으로 처할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리 지금부터 2주 동안 아무 데도 못 나가고 여기 있어야 되는… 그런 상황이야?”
“응. 기분 괜찮아? 많이 걱정되거나 무서우면 지금 기숙사로 돌아갔다가 2주 뒤에 자가격리 해제되면 그때 만나도 돼.”
보고 싶은 마음에 집에 초대했는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코로나 위험을 느끼게 된 상황이 미안했는지 그는 계속 내 기분을 살폈다. 첫 데이트를 하기 전 코로나를 무서워하며 바깥 외출을 극도로 꺼리던 나를 기억하고 있던 그는 내가 혹여라도 코로나 양성 반응인 사람과 같은 건물에 있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느끼진 않을까 걱정했다.
지금이야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치료법도 정확히 없고 무엇보다 다 나아도 후유증이 남는다는 말이 많았기에 걱정이 전혀 안 되었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이미 벌어진 상황을 계속 탓해봤자 나아질 일은 없었다. 플랫 메이트가 원해서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니고 케어 서비스 일을 하면서 운이 안 좋게 걸린 것뿐이었다. 게다가 이미 소독을 마치고 자가격리를 철저히 하고 있으니,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조심하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물론 나는 셰어하우스에 아직 정식으로 등록된 입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가격리 대상자가 아니었고, 그의 말대로 지금 나갔다가 2주 뒤에 와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셰어하우스 내의 사람들과 접촉했으니 감염 위험성이 있다고 볼 수 있었고, 기숙사로 돌아갔다가 행여 잘못되면 기숙사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꼴이 될 테니 나 하나 편하자고 남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일단 여기 지내면서 상황을 지켜보자고, 혹시 무슨 일이 생겨도 같이 있는게 여러모로 나을 것 같다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하나둘씩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 꽤 알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사귄지 일주일밖에 안된 신규 커플이 자의가 아닌 강제로 2주 동안 방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밖에 나가야 행복해지는, 집순이와 거리가 먼 내가 이 시기를 갈등 없이 잘 보낼 수 있을지 긴장되었다.
걱정을 미뤄두고 일단 자가격리 대비에 들어갔다.
셰어하우스 거주자들끼리 부엌, 화장실 등을 어떻게 나눠서 사용할 것인지 의논했고, 최대한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공용 공간 사용을 자제하고 식기구도 따로 사용하기로 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신속한 쇼핑이 필수였다. 당분간 유학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장보기를 할 수 없으니 마트 웹사이트에서 필요한 식재료들을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이 곳은 영국. 우리나라처럼 당일 배송이나 다음날 배송은 기대할 수 없던 터라 후반부에 식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꼼꼼히 계산해가며 물건들을 담았다.
지금 할 수 있는 재미들을 찾기로 했다. 나갈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것과 아예 못 나가는 상황은 전혀 달랐다. 집돌이 성향이 강한 남자친구조차도 감금되었다는 사실에 우울함을 토로했다. 우울함과 혹시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떨치기 위해 소소한 일들에 집중하고 그 시간을 함께 즐겼다. 신나는 노래들을 틀어놓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며 분위기 있는 노래에 맞춰 함께 잔잔히 움직여보기도 했다.
그리고 행복한 미래를 자주 꺼내 그려보았다. “2주 뒤에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로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해보기로 했다. 지금 이 시간은 곧 끝날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 우리에게는 더 행복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희망을 생각만 하지 않고 서로 나누었다.
서로 화를 내거나 서운하거나 싸울 일은 없었다. 우리는 시간이 많았고, 각자의 뒤로 끝없이 이어졌던 이전의 기억과 경험들을 자연스럽게 나누며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2주 간의 자가격리는 잠재적으로 위험할지 모르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잠시 분리해야 했던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더 똘똘 뭉쳐야만 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두 가지 미션을 모두 잘 수행해냈다.
“나는 누구랑 같이 절대 가까이 못 지내. 절대 같이 못살아.”라는 말을 달고 살았었다.
항상 내가 만든 세계에 집중하고 싶었고 외부로부터 그 세계를 지켜내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누군가 가깝다는 이유로 그 세계를 바꾸려고 할까봐 무서웠지만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정작 누군가가 침범하려고 할 때 그러지 말라고 말할 용기도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원하는 삶을 지속하려면 누군가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 세계를 무너트리려고 온 사람이 아니었고 나는 미움을 각오할 필요가 없었다. 공포와 위기인 것 같던 자가격리가 오히려 우리를 끈끈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위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위기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을 인정하고 미래를 가끔씩 그리며 하루를 살아내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