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전 증후군은 월경 전 7~10일 전부터 발생하는 신체적, 정서적 변화를 말하며 사람마다 그 정도와 증상이 다르다. 나의 경우에는 극도로 예민해져서 작은 일도 크게 받아들이고, 갑자기 슬퍼지거나 화가 나버리곤 한다. 무엇보다 그 예민함은 늘 예고 없이, 별 이상한 곳에서 터진다.
그 날 아침 메뉴는 전날 만들어 두었던 파스타였다. 나와 남자친구는 아직 잠이 덜 깬 몸을 이끌고 식탁에 앉아서 전자레인지에 데운 파스타를 입에 기계적으로 넣었다. 맛이 완전 이상한 것은 아닌데, 뭔가 수상했다. 요즘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파스타가 살짝 상한 모양이었다. 토마토소스, 파스타면 그리고 소금의 비율이 정확하게 맞아 둘 다 매우 흡족해한 파스타였던 터라, 실망이 컸다.
그는 파스타 대신 바나나 포리지를 먹겠다고 했고, 나는 반찬으로 만들어둔 양배추 볶음을 마저 먹고 있었다. 그가 바나나를 꺼내는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No!!!”를 외치며 주방으로 냅다 뛰어갔고, 그는 달려오는 나를 피해 빛의 속도로 바나나를 두 동강 내었다.
“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너는 오래된 바나나를 낭비했어!!”
“낭비가 아니야. 그 바나나도 나중에 먹을 거야.”
산지 꽤 된 바나나 3개와 그저께 사온 싱싱한 바나나 한송이가 있었다. 이미 검은 반점이 여러 개 생긴 바나나를 먼저 먹어야 버리지 않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평소에 식재료를 사놓고 묵혔다가 결국 버리는 일에 예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낼름 새 바나나를 꺼내 먹는 그에게 화가 났다.
“아니! 너는 우리의 오래된 바나나를 구하지 않았어!!”
장난으로 재빨리 썰어버린 바나나에 이렇게 크게 반응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그는 살짝 얼음이 되었다.
“오래된 바나나도 빨리 먹을 거야. 왜 이렇게 화가 난 거야? 정말 바나나 때문이야 아니면 내가 잘못한 다른 일들이 있어?”
검은 반점의 바나나 한 개를 꺼내 도끼눈을 한 채 그를 바라보며, 최대한 크게 바나나를 베어 물었다.
“아니야. 너는 새 바나나를 먹어. 내가 내일 아침에도, 내일모레 아침에도 오래된 바나나를 먹을 테니까.”
그는 나를 끌어안고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맛있게 만들었던 파스타를 먹을 생각에 들떴었는데, 파스타가 상해서 꽤 마음이 많이 상했더랬다. 먼저 산 바나나를 빨리 먹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검은 반점이 가득 핀 바나나가 아닌 노랗고 깨끗한 바나나를 먹으며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고. 그게 너를 이렇게까지 화나게 만들 줄 몰랐다며, 혹시 다른 서운한 일이 있는데 말을 못 하고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일은 없었다. 사실 그렇게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 언제나 음식을 할 때 가장 예쁘고 맛있게 된 부분을 나에게 양보하던 그였다. 새 바나나 하나 먹었다고 “너는 새 바나나 다 먹어라, 나는 피들 피들 말라가는 시커먼 바나나들 먹어 치울 테니.”라고까지 생각한 내가 부끄러웠다. 그냥 갑자기 너무 서운했다고, 다른 서운한 게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닌데 갑자기 오래된 바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버리게 내버려 두는 것 같아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빠른 화해를 한 후 손잡고 방으로 올라와서 달력을 보고 알았다. 유난히도 뾰족한 그분이 왔다 가셨던 것이었다. 그 날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님을 나도 알고 그도 알지만, 미안함과 약간의 부끄러움은 언제나 내 몫이다.
그 날의 우리는 분명 평소의 우리와 다르다. 월경을 핑계로 유난을 떨고 싶지도 않고, 연인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다. 갑자기 달라지는 모습에 우리도 놀라고 당황스러울 뿐이다. 연인이라면 다소 논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인 반응마저도 포용해주고 따뜻하게 품어 주길. “떡볶이 먹을까?” 하며 덤으로 초콜릿까지 사다 준다면 더없이 고마운 존재가 된다.
“너 곧 할 때 돼서 예민한 거 같아.”, “너 그 날이라서 괜히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야?”는 금기어에 가깝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든 짜증이 났든 그 마음은 진짜다. 월경전 증후군 때문에 폭발했다는 이유로 연인이 느낀 감정을 별거 아닌 듯 가벼이 여기거나 오롯이 월경 때문이라고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서운한 부분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그냥 서운했던 건지 차근차근 물어봐 준다면 그 일주일마저도 행복한 연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