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러 이삿짐 싸는 달팽이

국제 이사 하기

by 청두유

외국에 살러 가는 국제 이사가 살면서 두 번 있었다. 대학생 때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그리고 석사 공부를 위해 영국행 짐을 싼 작년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도 짐을 쌌지만 이사라기보단 물건을 대부분 버리고 오는 처분에 가까웠다. 작년 10월, 영국으로 가는 짐을 싸면서 국제 이삿짐 싸기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애틋하게 28인치 캐리어 2개를 꽉꽉 채워 담았다. 입을 벌린 채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캐리어 위에 올라타서 "잠긴다, 잠긴다, 잠긴다."하고 주문을 외우며 지퍼를 겨우 잠갔더랬다.


영국에 온 지 1년이 되지 않아 계획에 없던 국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우리는 영국에서의 1년을 마치고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많이 고민했고, 새로운 시작을 터키에서 해보기로 했다. 일종의 체험 기간인 셈이다. 나에게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나라에 가서 이곳이 어떤지 알아보는 기간이 될 것이고, 남자친구에게도 조금은 질리고 지겨웠으나 타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잠시 애증의 "증"을 잊은 고향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시험하는 기간이 될 것이다.



코로나 시대라 유학 기간 동안 딱히 소비한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짐이 늘어 있었다. 저절로 는 것 같았지만 모두 내 돈 내산, 직접 사들인 물건들이었다. 1년밖에 안 있을 텐데 굳이 이것저것 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한 달, 두 달 버티다가 결국 사고만 물건들이 방 한구석을 가득 채웠다. 나이프 세트, 프라이팬, 물걸레, 체중계 등 요긴하게 써온 물건들과 샐러드 탈수기, 스무디 기계 등 지금 생각해도 왜 샀지 싶은 물건들이 뒤섞여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 4년 넘게 있었던 남자친구는 책상, 서랍장, TV 모니터 등 어지간한 살림살이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 처분해야 할 가구들이 훨씬 많았다.


한국에서 중고 거래 플랫폼의 강자는 단연 당근 마켓이다. 영국에서는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지 않고 Facebook의 Market space를 활용한다. 지역별로 물품 사진과 원하는 가격을 적어서 올려두면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메신저로 연락을 취하는 형식이다. 출국이 2주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여유로운 그에게 빨리 올려야 되는 거 아니냐며, 아무도 안 사가면 어떡하냐고 성질 급한 토끼처럼 재촉했다. 그는 금세 팔리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고 그 말이 맞았다. 업로드하자마자 사람들의 메시지가 오고 물건들이 팔려 나가기 시작했고 출국 전날, 모두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일반적인 이사는 불필요한 짐을 처분하고 알짜배기들만 남기는 작업이 전부라면, 국제 이사는 가는 지역에 따라 챙겨야 될 짐이 늘어난다는 특징이 있다. 터키에 없을지도 모르는 식재료들을 챙겨 가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재료를 다 싸가고 싶었지만 수하물 제한이 있기에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먼저 고추장, 된장, 두반장, 참기름, 화조유, 간장 등 주로 요리에 필요한 양념들을 터키에서 구매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터키에서 고추장이 13,000원, 된장이 거의 2만 원이 넘는다는 게 충격적이었으나 구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 외에 절대 포기 못하는 식재료는 매운맛을 내는 것들이었다. 떡볶이 떡, 불닭볶음면, 훠궈 소스는 삶의 행복을 위한 필수 요소이기에 반드시 챙겼다.


25kg짜리 짐 3박스를 국제 택배로 보냈는데도 수하물 규정을 훨씬 초과한 무게가 남았다. 수하물용 캐리어 23kg, 기내용 가방 8kg가 규정이었는데, 챙긴 짐은 30kg에 15kg였다. 1kg 추가될 때마다 10파운드씩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출발 예정 도시인 에든버러에 와서도 짐을 줄였다. 아쉬운 마음에 꾸겨 넣었던 휴대용 커피포트, 된장, 연두 등이 호텔에서 최종 심사를 거쳐 처분되었다. 그렇게 줄이고 줄여서 우리 캐리어는 27kg였고, 기내용 백팩은 10kg이 되었다.



국제 이사에는 비슷한 서사구조가 반복된다. 짐을 쌀 때는 이 많은걸 어떻게 가져가나 싶어서 막막하다. 막막함이 지나친 짐으로 변하는 순간 이거 꼭 가져가야 하나, 저건 필요하긴 할까 고민에 빠지고 결국 하나둘씩 빼고 만다. 비행기에서 내려 수하물 찾는 벨트에서 짐을 들어 올리는 순간 가진 거라곤 두 팔 뿐인 여리고 나약한 인간이 되어, 왜 이렇게 짐을 많이 쌌는지 그때의 나를 저주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짐을 풀 때는 짐 쌀 때랑 짐 나를 때 고생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왜 이것밖에 안 가져왔지? 왜 더 챙기지 못했지?’ 하며 온갖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터키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두고 온 고춧가루와 들깨가루가, 호텔에 두고 온 된장이 그리워지는 것은 전형적인 레퍼토리의 일환이었다.


아무리 현명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해도 짐 싸는 나는 언젠가 또 언제나 욕을 먹는다. 이렇게 과거의 나는 언제나 과오를 저질렀다. 현재의 나는 이를 깨닫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래의 나에게 교훈을 전달하지만 그 순간에도 과오를 저지르고 있다. 이 굴레를 끊어낼 수는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래의 나에게 교훈을 전달하고 싶다. 짐을 싼 과거의 나를 그만 원망하고 그냥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국제 이사 별거 아닌 듯 넘어가 달라고 말이다.


때마침 산책에서 만난 왕달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