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수영하러 가려고 세팅해 둔 알람이 울린다. 졸음이 붙어 있는 채로 폰을 더듬거리며 오른쪽으로 화면을 밀어 본다. 그럴 줄 알고 7시 5분, 7시 10분 알람도 세팅해 둔 현명한 어제의 나 덕분에 결국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 때다. 왠지 오늘따라 더 다리가 녹아내리는 것 같고 허리가 뻐근해서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혹시 이렇게 몸 컨디션이 안 좋은 시기에 운동을 독촉하면 몸이 나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대부분 그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운동을 며칠 하지도 않았으나 찾아온 운동 권태기가 그 원인이다.
“그래서 네가 입으로만 다이어트한다고 하고 여태 성공해 본 적이 없는 거야.”라고 말해도 반박할 말은 없다. 다이어트의 8할이 식단이라고 하지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다이어트에 운동은 필수다. 호기롭게 새로운 운동을 시작했다가도 금세 운동 권태기가 오는 바람에 다이어트도, 운동도 길게 하지 못했다. 이번 수영 역시 예상대로 빠르게 권태기가 찾아왔지만 이번엔 달랐다. 실패를 빼곡히 축적해온 지난날들과 달라진 조건이 하나 있다면 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날에도 옆에서 가자고 재촉하고 격려해주는 파트너가 있으니, 수영복을 입고 문을 열고 집을 나설 수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수영장까지 슬리퍼를 질질 끌고 가는 길에서도 졸음과 귀찮음은 온몸에 묻어 있다. 이 질긴 감각들은 물에 들어가는 순간 뜨거운 커피에 한 스푼 넣은 설탕처럼, 광고 마냥 찬 물에 풀어낸 세제처럼 사르르 녹아 흔적 없이 사라진다.
밤새 잠들어 있던 근육들이 물속에서 삐그덕 삐그덕 활동을 시작한다. 마음껏 물을 느끼며 무리하지 않으며 레일을 왕복하고 나면 천천히 속도를 붙인다. 물론 수영 초짜가 속도를 내려고 해 봤자 물 밖에서 보기에 별 차이 없지만 몸의 반응은 다르다. 아직 가장 효율적으로 몸을 쓰는 방법은 모르지만 몸 전체가 나름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간다. 가끔 숨을 잘 고르지 못해 숨이 막혀 배부를 만큼 물을 들이켜도 보고, 무리해서 물을 차느라 기능성 제로 허벅지가 파업을 선언하여 수영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느려진 속도로 벽을 잡기 위해 허덕 거리기도 한다. 수영장에 있는 그 어떤 어린이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느리지만 한 바퀴 돌 때마다 가장 다이내믹하고 에너지 넘치는 완주를 해낸다. 귀찮음도 짜증도 모두 사라진 수영장에는 더 잘하겠다는 열정과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함 만이 둥둥 떠다닌다.
운동이 늘 그렇다. 한 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에는 의지에 불타다 가도 막상 운동하러 나가기 직전에는 귀찮음이 몸과 마음을 집으로 끌어당긴다.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운동하고 나면 행복하고 그렇게 긍정 에너지가 넘칠 수가 없다. 그러니 소중한 내 몸이 행여라도 닳아 없어질까 싶어 집에 고이 모셔 두려는 귀차니즘을 극복해내야 한다.
우리의 뇌는 최상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지만 늘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지는 않다.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불특정 한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더 큰 행복과 성취감을 얻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마음이 시키는 일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가지 말까…?"라는 마음을 거스르고 기꺼이 수영하러 가고자 하는 의지가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