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꼬치엔 치엔다오후 맥주

※사진은 칭다오 생맥주 입니다.

by 청두유

저녁이 되면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한다. 다이어트할 겸 오늘 저녁은 파파야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기숙사 2층 복도 끝에 위치한 친구네 방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고 나오는 친구에게 늘 하던 질문을 한다.

“북문 갈래?”

친구는 침대에 앉아서 컴퓨터를 하느라 혹사당한 허리를 좌우로 돌리며 “오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인 저장성에 있는 진화라는 도시에 왔다. 중국 남쪽이라 날씨도 따뜻하고 가고 싶었던 도시 상하이에서도 가깝고 살기 좋은 도시 항저우랑 같은 저장성이니 선택은 완벽해 보였다. 물론 중국에서 가깝다는 의미가 기차로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뜻한다는 사실을 중국에 와서야 알았다.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에게 진화는 놀라운 도시였다. 할머니 댁처럼 산골짜기 시골도 아닌데, 학교 밖에서 조금만 걸으면 판자촌이 있는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비행기 타고 오기 전에는 학교 앞 첫 골목부터 술집이며 카페가 가득했는데, 이곳 진화에서는 학교 주변에 술집도, 앉아서 이야기할 만한 카페도 거의 없었다. 삼시 세 끼를 해결하고 생필품을 사는 학생들의 주요 활동 장소는 북문이었다. 문 밖을 나가면 도로포장 상태가 좋지 않아 노란 먼지가 자주 일곤 했다.

17-10-03-11-36-03-340_photo.jpg 지겹게 드나들던 베이먼(북문) 북경어 쓴다고 베이멀~ 이라고 말하며 낄낄대곤 했다.


중국 학생들은 대체로 이 아무것도 없는 진화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중국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기 학교 애들은 주변이 황량해서 그런지 맨날 공부만 한다는 말이 들렸다. 유학생들은 그 안에서도 기어코 즐길 거리를 찾았다. 번듯한 술집은 없지만 밤이면 그늘막에, 조금만 힘을 줘도 흔들거리는 둥근 플라스틱 테이블과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가 북문 거리에 등장했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양꼬치부터 각종 구이와 맥주를 팔았다.


개그 프로그램으로 “양꼬치엔 칭다오”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졌지만 중국 남부에서는 보통 양꼬치엔 치엔다오후 맥주를 마셨다.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카스, 하이트처럼 자주 마시는 맥주는 ‘설화’이지만 도수가 2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유학생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순 없었다. 다들 칭다오 맥주만 알겠지만 우리는 더 맛있는 로컬 맥주를 알고 있다면서 양꼬치 집에서 꼭 치엔다오후를 찾았다. 우리는 양꼬치 집에서 양꼬치, 부추 구이, 가지 구이를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특히 나는 술에만 취하면 닭 심장을 사달라고 그렇게 졸랐고, 늘 닭 심장을 주문해주었는데 먹은 기억이 없었다.


진화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로웠다. 적절한 시기에 맞춰 적절한 일들을 해나가야 하는 레일에서 잠시 벗어나 하고 싶은 대로 달렸다가 쉬었다가 웃으며 살았다. 전 세계 각국에서 모두 다른 몸과 얼굴, 생각을 갖고 이곳에서 만났다. 기숙사에서 마주친 소말리아 여자애가 나를 보며 너무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내가 유독 예뻐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용기가 생겼다. 이전까지 부끄러워서 입지 못했던 치마와 반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화에서의 삶을 떠올리면 늘 북문에서 양꼬치를 안주 삼아 맥주를 한 짝씩 마시고 학교 동남쪽 귀퉁이에 위치한 기숙사로 가는 길이 생각난다. 호숫가를 걸으며 친구와 깔깔거리며 웃던 날도,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도서관 앞에 있는 공자 동상을 지나며 붉은 하늘을 바라보던 날도 안개처럼 머릿속에 스르륵 펼쳐지곤 한다. 그 거리에서 가끔씩 말이 없어지곤 했는데, 엿가락처럼 시간을 늘리고 늘려서 이 순간을 더 오래 살아내고 새기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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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고 자주 걷던 저장사범대학교 호숫가


몇 년 뒤 진화에 다시 가서 양꼬치와 가지 구이를 먹었다. 먹자고 졸랐던 닭 심장은 비려서 삼키기 힘들었고 양꼬치도, 맥주도 한없이 들어가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가끔씩 나는 양꼬치와 가지 구이가 그리워서 몸이 꼬일 때가 있다. 그리움을 참고 참다가 중국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를 만나 중국인이 한다는 양꼬치집을 검색해서 찾아간다. 그 맛이 아닌 것에 늘 실망하면서도 양꼬치를 굽고,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치엔다오후 맥주를 찾는다.

양꼬치.jpg 한국에서 먹는 이렇게 최첨단(?)으로 된 양꼬치는 그 맛이 나지 않는 것만 같다.


그 때 우리는 그저 일상을 살았고, 그 일상이 소화되고 발효되어 추억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음식이 아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참 많이도 먹었다.

mmexport1507133086897.jpg 몇 년 후에 다시 가보니 이런 것도 생겼더라...ㅎ 많이 발전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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