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영원히 우리의 모차르트!
어린 시절 동네 피아노 학원은 다니다 말았고, 학창시절 음악 수업마다 낮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노느라 음악 공부를 못 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 자신 있게 모른다고 주장하는 당신! 과연 그럴까요? 정말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까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디선가 모차르트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 있을 겁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지금부터 클래식 음악 좀 안다고 해도 됩니다. 모차르트를 안다는 것은 클래식 음악의 절반 혹은 삼분의 일 정도는 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거든요. 심지어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각종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모차르트의 음악도 많이 듣고 살았습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습니다. 모차르트는 클래식 음악사에 독보적이며 위대했고 또 다시없을 천재입니다.
]클래식 음악사에서 모차르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납니다. 그는 굉장한 천재였고, 위대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우리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그의 악흥은 지금도 그를 사랑하게 만듭니다.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영웅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년 1월 27일~1791년 12월 5일)는 오스트리아 사람입니다. 오스트리아 여행을 해 본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어딜 가나 모차르트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의 얼굴이 안 보인다면, 이름이 쓰인 종이나 간판이 있을 거고요. 손만 뻗으면 어디서든 모차르트 쿠겔른(모차르트 얼굴이 인쇄된 은박지에 싸인 초콜릿, 종류에 따라 위스키가 들어있기도 하다)을 살 수도 있습니다. 잘츠부르크에서 수제로 만드는 원조 모차르트 쿠겔른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요. 공장에서 생산되는 유사품들도 많으니 어디서든 한 번 사서 먹어보시길요! 이렇듯 오스트리아에서 모차르트의 존재감은 강력합니다. 그들은 모차르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츠부르크의 한 골목에 세워져 있던 모차르트. 미라벨 사에서 만드는 모차르트 쿠겔른은 공장 생산 제품입니다.
천재 음악가였던 그는 1756년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세 살부터 연주를 했고요. 다섯 살에 작곡을 시작했으며 여섯 살에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닐 정도로 당대 최고 음악 신동으로 자랐습니다. 그는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사랑을 받았고, 수많은 유럽 왕족과 귀족들 앞에서 실력을 뽐내고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돈도 잘 벌었고요. 그토록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17세의 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월급쟁이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시절의 음악가들은 월급을 받으며 음악 활동을 했던 일종의 고용된 음악가였거든요. 청소하고 요리하는 하인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모차르트는 정말 유명했던 음악 신동이었습니다. 다섯 살에 아버지와 누나를 따라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는데요.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를 비롯한 당시 많은 왕족과 귀족들이 그의 연주를 들으려고 큰돈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우선 모차르트가 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쓴 편지 일부를 소개해드릴게요.
“저는 단지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제 건강과 삶이 더 중요하니까요. 저는 제가 하인인지 몰랐습니다. 그 일을 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은 넌더리가 납니다.”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1781년 5월 12일 중 『모차르트 삶의 기록들』 일부 발췌
1756년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에서 모차르트가 태어났습니다. 잘츠부르크의 관광 명소 중 하나입니다.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생활했던 집을 거닐어보는 기분도 꽤 괜찮습니다.
잘츠부르크를 저주한 모차르트
모차르트가 쓴 편지를 읽고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무언가 짠 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특히 작은 마을이던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 덕분에 먹고 사는 곳이 되었는데요. 진심으로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에게 큰 감사를 해야 합니다. 모차르트로 인해 잘츠부르크를 찾는 관광객이 늘고 있고, 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음악 페스티벌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매년 개최되고 있는데요. 모차르트 효과로 인한 다방면의 수익은 앞으로도 계속 될테니까요.
잘츠부르크에서 매일같이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열립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페스티벌은 잘츠부르크페스티벌인데요. 2019년 199회의 공연과 270,584명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살아있을 때 잘츠부르크는 그에게 지옥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당시 그를 고용했던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인 히에로니무스 폰 콜로레도가 모차르트를 천재로 대접해주지 않았거든요. 적은 봉급을 주었고, 막대한 양의 일감을 주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자신의 명령에 숨죽이고 살았듯, 아들 모차르트도 그렇게 살겠거니 했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수많은 풍파를 견뎌냈습니다. 정확히 짚어보자면 더 좋은 직장을 구하려 연주 여행도 많이 다니기도 했는데요. 번번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어 되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결국 대주교와 결별하게 됩니다. 대주교가 그를 해고했는지, 모차르트가 사표를 던졌는지에 대해서는 영원한 비밀에 부쳐지게 되었습니다. 사표를 내라고 한 사람은 분명 대주교인데, 사표를 제출하니 4차례나 반려한 시종장의 행동도 의문 투성이입니다. 어쨌든 둘의 관계는 끝이 났다는 것이 중요하죠.
이후 모차르트는 두 번 다시 잘츠부르크에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공언을 하기도 했고요. 실제로도 얼마간 잘츠부르크와의 인연을 끊어버립니다. 정말 견딜 수 없이 끔찍한 직장이라면 그만 두어야하는거니까요. 잘 했어요, 모차르트! 당신의 생각처럼 스스로의 건강과 삶이 더 중요하니까요!
빈에 살며 자유 예술가로 성공
모차르트가 빈으로 이사를 한 목적은 한 가지였습니다.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음악가로 살겠다는 강인한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는 빈의 상류 사회에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갖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그의 예상은 맞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귀족 신분의 학생을 가르쳤고요. 작품 의뢰도 많아졌으며, 선불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하던 그의 연주회도 늘 성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유명세를 이용해 지내다보면 언젠가 왕실에서 정식으로 모차르트에게 적당한 일자리를 내려줄 것이라 믿었던거죠.
빈에서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 모차르트는 돈을 잘 벌었습니다. 오늘날의 연주회와 달리 당시에는 미리 돈을 내고 연주회 티켓을 예매해야 하는 시스템이었거든요. 선불로 벌어들인 연주회 수익금과 작곡으로 번 돈 등을 통해 상아로 만든 당구대를 집에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 많은 파티를 열기도 했습니다. 귀족이 아니었지만 마치 귀족처럼 살기 위해 수입의 대부분을 탕진한 건데요.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잘츠부르크의 아버지와 누나에게 일정 액수의 돈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스물다섯의 나이에 콘스탄체와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인생 처음으로 한 독립이었습니다. 물론 그의 아버지는 콘스탄체와의 결혼을 무척 반대했는데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죠. 결국 레오폴트 모차르트도 아들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고사리 손으로 만들기 시작한 작품 630편
다섯 살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모차르트. 그가 작곡했다고 알려진 작품만 630편이 넘는데요. 그가 남긴 대부분의 작품은 단순한 습작 위주가 아닌 완성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악보에 옮겨 적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다시 한 번 그의 천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빈에서 만든 그의 오페라들은 큰 화제를 몰고 다녔습니다. 등장인물이 어느 나라의 말을 사용하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방식의 사랑을 하는지 등 그의 오페라에 대한 이야기로 도시 곳곳이 시끌시끌했다고 하네요. 오늘날 가장 많이 알려진 그의 오페라는 <마술피리>인데요.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는 정말 지금 들어도 짜릿하고 멋집니다.
이밖에도 모차르트는 교회 음악, 피아노 소나타, 실내악, 교향곡 등을 만들었고요. 그 중 디베르티멘토는 그가 만들어 낸 분야입니다.
영원한 1등은 없듯 모차르트도 점점 빈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그의 인기가 시들해질 무렵부터 죽음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작품의 의뢰가 끊겼고, 그가 여는 연주회는 누구도 예약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빈의 상류사회가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이죠.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미완성으로 남긴 유작은 <레퀴엠>입니다. 그의 제자였던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에 의해 완성되어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소문과 함께 잠들다
1791년 35세의 나이로 요절한 모차르트.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후 전대미문의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이야기인데요. 역사 상 가장 성공적인 소문이 아닐까요. 살리에리가 정신 병원에 입원한 후 급속도로 퍼져나간 이 소문의 진위 여부는 오직 세 사람만이 알고 있을겁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그리고 이 소문의 방송국 역할을 자처한 누군가!
또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곧 시들해졌던 콘스탄체와의 결혼 생활도 자연스럽게 끝이 나버렸고요. 모차르트와의 사이에서 6명의 자녀를 출산했지만, 차남과 막내만이 성인으로 성장했는데요. 그 둘은 특별한 음악적 재능이 있던 것 같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3대째 음악 가문을 만들지는 못했거든요.
이토록 클래식 음악에 지대한 인물로 남은 모차르트. 화려한 명성에 걸맞지 않은 생활고를 겪다 죽은 탓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는 빈의 무연고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어떠셨나요. 모차르트에 대해 한 걸음 더 다가간 기분이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갈 계획이 있다면 잘츠부르크에 한 번 들려보시길 추천합니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순간 생각보다 작은 곳이라 놀랄 수 있는데요. 만약 빈에서 기차를 타고 온 경우라면 굉장히 상쾌한 공기에 만족해할 겁니다. 그리고 모차르트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곳을 거닐며 그를 기억해보는 건 어떨까요. 모차르트가 생전에 죽도록 싫어했던 고향, 잘츠부르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가장 따듯하고 격렬하게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곳 또한 잘츠부르크라는 사실을요! 브라비(bravi)!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 찾는 여행 코스!
모차르트가 자주 가던 카페 토마젤리(Tomaselli)에서 그가 즐겨 마셨던 아몬드 밀크 마시기→모차르트 동상이 있는 모차르트(Mozartplatz) 광장 산책→모차르트가 세례 받은 잘츠부르크 대성당(Salzburg Cathedral) 둘러보기→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 9번지에 있는 모차르트의 생가(Mozarts Geburtshaus) 방문→유럽 최고령 레스토랑인 슈티프츠켈러 성 페터(Stiftskeller St. Peter)에서 점심 먹기→카페 콘디토라이 퓌르스트(Konditorei Fürst)에서 모차르트 쿠겔른 먹기→모차르트의 집(Mozart Residence)둘러보기→세계 최대 규모의 모차르트 도서관인 비블리오테카 모차르티아나(Bibliotheca Mozartiana)구경하기→모차르테움(Mozarteum), 잘츠부르크 인형극 극장(Salzburg Marionette Theatre)에서 공연 보기→호텔 자허나 피델러 아페(Fideler Affe)에서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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