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제790회 정기 연주회 프로그램 노트를 썼습니다.
얼마 전 KBS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프로그램 북에 실릴 프로그램 노트를 썼습니다. 다음 주 공연이에요.
공연의 프로그램 북은 공연 소개, 연주자 소개, 연주 곡목에 대한 해설, 연주자 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지요
그리고 짧게는 공연 직후, 길게는 공연 종료 후 며칠 혹은 그보다 조금 더 긴 날동안 살다 버려집니다.
이것이 프로그램 북의 운명이고 숙명입니다.
물론 공연 애호가 분들 중에는 프로그램 북을 수집하는 분들도 계시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 북은
생각보다 빨리 버려집니다.
공연 시작 전 공연장 로비에서
혹은 공연장 좌석에서
어두운 불빛의 도움을 받아
재빠르게 읽히고 당연히 버려집니다.
저도 어린 시절부터 공연장에 다니며
셀 수 없는 프로그램 북을 버렸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것들도
프로그램 북의 운명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언젠가 모두 사라지는 운명을 타고 났으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프로그램 북의 운명이
그렇게 슬프지많은 않다고 여겨봅니다.
어떻게 하면 청중의 시선을 몇 초라도 더 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 노트 한 줄이라도 더 읽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 노트를 읽고 공연을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수 있을까?
바꿀 수 없는 버려질 운명이라는 걸 알지만
저는 프로그램 노트를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버려질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들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저도 이런 제가 재미있었지요.
그렇게 해서 저는 저만의 프로그램 노트를
써내려갔습니다.
칼럼 쓰는 일도 즐겁지만
프로그램 노트를 쓰는 일도 할 때마다
색다른 것 같습니다.
제 작년에는 테너 존 노의 공연
프로그램 노트를 썼는데요.
이번 프로그램 노트에는
저만의 시선으로 라흐마니노프의
두 작품을 담았습니다.
버려질 글을 쓰는 마음을 정리해서 최대한 공연에서 연주될 작품과 작곡가의 로맨틱한 이야기들.
마침 공연의 주제도
로맨티시스트 라흐마니노프였거든요.
라흐마니노프는 제가 손꼽는 좋은 남자입니다.
아내를 무척 사랑했고
흔한 바람둥이 음악가로 살지 않았거든요!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사적인 예술>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이런 저런 생각과 함께
생각보다 빨리 버려질 글을 완성했습니다.
드디어 다음주 공연일입니다.
예정대로 공연장에 가보려던 제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언젠가 제가 쓴 프로그램 노트가 실린 프로그램 북을 들고 연주자의 사인 줄에 설 날이 있겠지요.
내 손에서 떠난 글의 버려질 운명을 생각하는 이 순간!
다음 프로그램 노트는 어떤 작곡가의 어떤 작품을 쓰게 될 지 설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