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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Mar 17. 2024

남겨질까 두려운 감정은 터무니없을 만큼 익숙했다.

서른두 번째 공백

나는 늘 이게 문제였다.

나를 이루던 사람들을 과거에 남겨두고 나아간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것을, 내 자신이 가장 용납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그들과 함께 행복하지 못해서, 그들에겐 없고 나에게만 놓여진 것들은 줄곧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그들에게 미안해서, 지금 이 순간에 그들이 함께하지 못해서, 그런 이타적인 마음보다도 그저 그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었던 나의 욕심이 그들을 잃는 것으로 진작에 깨져버렸기 때문이었다. 파편에 찔린 상처가 아물지 못하게 스스로 자꾸 건드렸다. 기억해야 한다고. 희망적인 행복을 섣불리 기대하고, 약속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이들을 수차례 잃고 나니 두려움만 남았다. 어느 순간 눈을 뜨니 그들이 세상에서 영원히 존재를 지워버린 것처럼, 행복을 기대한 것에 대한 벌과 같이 나는 또 잃게 될 거야. 분에 넘치는 것을 스스로의 것이라 여긴 오만이 언젠가 되돌아올 거야. 실은 알고 있다. 결국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서 행복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게 언제든 홀연히 사라질 것만 같아, 또 나를 떠날 것 같아.

남겨지는 감정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남겨질까 두려운 감정은 터무니없을 만큼 익숙했다. 잃고 남겨진 공허함을 끌어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던 척 남들 앞에 평온하게 일어서는 것은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나는 몇 번이고 그런 척을 하다가, 스스로에게 질려버릴 때마다 여지껏 잘만 해온 줄 알았던 감정의 포장을 할 의지를 잃는다. 굴레가 반복된다. 확신을 주지 않으면 먼저 나서서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내 전부를 잃은 날부터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내 안에 큰 구멍이 있다는 사실과,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 구멍은 평생 메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남들이 나를 믿어도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근본적으로 나의 불안은 끝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불안이 좀먹을 것 같은 날은

자꾸 지난 글들을 돌아본다.

불안과 두려움에 집어삼켜진 과거의 글을 읽다 보면

조금은 진정이 된다. 스스로의 부정적인 감정에 깊이 동화되는 것이 때때로 안정을 준다. 내게는 아주 오래, 그 어떤 것들보다도 가장 익숙했던 것이니까. 그리고, 이런 날도 결국은 지나왔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괜찮아,

괜찮아.

아직 전부 여기에 있어.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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