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답게 Jan 19. 2023

이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사람, 엄마

슬픈 진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가족, 엄마.


엄마는 나에게 있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

사랑하지만 사랑을 느낄 수 없고 미워하지만 죄책감에 온전히 미워할 수 없는 존재.


이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채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 처박아 둔 존재이다.


가끔 쓰디쓴 감정의 찌꺼기들이 소용돌이쳐 올라오면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다 아린 가슴을 붙잡으며 감정들이  가라앉길 기다린다.


지금도 엄마를 사랑하기가 그렇다고 마음껏 미워하기가 두렵다.






나에게 극단적 양가감정을 느끼게 해 준 엄마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다.

어릴 적부터 남, 녀 차별을 받아왔고 말을 험하게 하는 엄마 밑에서  자신의 성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착한 딸로 자라 온 듯하다.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상처가 많다는 걸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없지만 최근 친구 엄마를 통해 들은 얘기는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받은 상처로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것이다.  

엄마는 공부에 열의가 많았으나 외삼촌들 대학 보내느라  가방끈 짧은 것을 한으로 여겼다. 그래서 엄마는  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키우겠다고 다짐을 했고  내가 원하면 대학도 그리고 유학도 보내 주겠다는 말을 입버릇 처럼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엄마의 말이 행동으로 지켜진 것은 거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엄마를 이렇게까지 미워하지는 않았다. 엄마는 가정에서 피해자이고 누구보다 엄마 인생의 힘듦을 알기에 결혼  둘째를 낳을  까지도 아빠욕을 하면 들어주고 받아주었다.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 한평생을 사는  여자로서의 인생이 안쓰럽기도 했고 엄마니까 그렇게라도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키울수록 엄마의 지혜롭지 못한 행동에 나는 마음이 아팠다. 자식을 힘들  사용하는 감정 쓰레기통으로 생각하는 것도 싫었고 점점 거칠어지는 엄마의 말과 행동힘들었다. 서로가 부딪히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의 패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엄마를 이해하기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고 거기에서 오는 인지부조화는 과부하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과거의 상처들은 종교와 상담의 힘을 빌어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처에 새살이 돋으려 하면 엄마는 다시 상처된 말을 쏟아부었다.


여러 흉터들이 있지만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는 말들이 있다.


" 집에 웬수가 한 명씩 있다던데 아무래도 그게 닌거 같다."


"  같은 년이랑은 이젠 끝이다. 다시는 보지 말자."


" 도대체 니가 몸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유산이 됐노?"


" 니는  이렇게 부정적이노!." (고함치는 소리)

,   잘라먹고 이렇게 쓰면  되지만 ,  내용을 쓰면  문장들이 살아 움직일  같아 차마 쓰지 못하겠다.

자녀에게 아무리 화가 나도 해서는  되는 말이 있다. 사실 나는  말을 들을 만큼 예의가 없거나 감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엄마 입장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이런 말을 들은 이유는 알고 있다. 엄마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 나의 대답이 나르시시스트 엄마의 무능감과 부적절감을 자극했기에 엄마는 나에게 불같은 화와 독설을 퍼부었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시어머니와 멀이진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