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지킨다!
시어머니와 나.
우리가 처음부터 날 선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사실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평소처럼 그냥 '네~네~ ' 했다면 이렇게 까지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보기에는 평화로운 인사로 마무리되었을지 몰라도 어머님의 첫인사에 내 속은 또 문드러졌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설날 나에게 첫 공황 장애가 왔다.
어느 때처럼 평범한 설날 저녁,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려 할 때 어머님은 집 밖을 나서는 나에게 친정엄마 얘기를 꺼냈다.
“이제 엄마하고 화해해라. 응?”
엄마와 연락을 안 하고 있는 걸 아신 후로 어머님은 볼 때마다 나에게 친정 이야기를 꺼냈다. 웬만한 이야기는 다 '예'라고 대답하는 나도 엄마와의 관계만큼은 시어머니 뜻대로 할 수 없었기에 정중히 부탁드렸다. 내가 알아서 해결하고 싶으니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어머님은 자신이 어머니께 못한 것이 마음에 후회로 남는다며 어떻게든 이 일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 했다.
말씀하시는 횟수가 반복이 되면서 나는 어머니께 조금 더 단호하게 얘기했다.
“어머님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이제 그만 말씀해 주셨으면 해요.”
이렇게 부탁하는데 계속 얘기하는 어머님이 야속하기만 하다.
“세상에 자식 미워하는 부모는 없다. 니 그러면 나중에 후회한데이.”
몇 주전 손녀가 너무 보고 싶은데 애들이 집에 안 온다며 시댁에 전화한 친정 엄마의 전화로 더 단호해지셨다. 결혼 전까지 부모에게 정신적,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받은 내가 여전히 바뀌지 않는 아니 더 심해지는 부모를 끓을 수밖에 없는 나의 처절한 결심을 무시한 채 어머님은 마치 어린아이 버릇 고치 듯 말씀하신다.
속상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어머님은 나의 울음을 멈추고 싶으셨는지 흔들리는 내 몸을 꽉 앉으셨고 내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나를 제압했다. 답답하고 숨이 막혀 어머니 품을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 쳤지만 힘이 얼마나 세신지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님께 힘으로 압도되고 말았다..
어떻게 그 방을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망치듯 나와 달리는 차 안에서 펑펑 우는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숨을 쉬고 싶은데 쉬어지지 않는다. 순간 공황 발작이 왔음을 알았다. 예전에 배웠던 질환인지라 머릿속으로 죽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숨을 쉬고 싶은데 쉬어지지 않는 공포는 내가 곧 죽을 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기 충분했다.
운전하다 놀란 남편은 나에게 봉지를 내밀고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음악을 크게 틀고 잠시 쉬어갈 장소를 찾는다. 나는 검은 봉지를 코와 입에 갖다 대고 천천히 숨을 쉬며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10분쯤 지났을까.. 가빠진 호흡은 조금씩 진정되고 정신이 돌아올 때쯤 아까의 서러움이 밀려온다. 그날 휴게소에서 난 얼마나 울었을까.. 한참을 밖에 앉아 내가 괜찮아지길 기다렸다.
그 후로 나에게 시댁은 더 이상 안전한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아니다. 어떤 상황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공황 발작이 다시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그 해 찾아온 코로나와 첫째 아이의 입시.
우린 그 핑계로 시댁 방문을 1년 넘게 하지 않았다.
나에겐 몸과 마음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