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만? 예외는 없다

마흔 중반, 내 삶을 돌아보다

by 쓰는교사 정쌤

“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세요? 많이들 왜 나에게만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냥 그렇게 걸린 거예요. 원인을 찾기 힘들어요.”

“억울하지는 않은데 그냥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이 되어서요.”

“그건 알 수가 없어요. 어느 병원에서든지 치료 가능하시니까 원하시는 대로 도와드릴게요.”


의사 선생님은 너무나 친절하게 내 갑상선의 모양까지 그려가면서 어느 부분이 암인지도 알려주셨다. 정확히 이 때는 ‘갑상선암 의심’이었다. 그래서 수술하고 나서도 ‘그래도 그 작은 혹이 암이 아닐 수도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조금 했었다. 수술했는데 갑상선암도 아니면 어쩌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떼어낸 조직이 갑상선암이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공존했다. 암이 아니면 그래도 내가 여태까지의 생활습관이 괜찮았던 것이니까. 앞으로 지금처럼 일하고 살아도 아플 일은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수술 후 2주 후에 들린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갑상선 유두암이 맞습니다. 아주 깨끗하게 떼어냈고 전이는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그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랬구나 암이었구나. 암이라는 게 말로 듣고 나면 참 마음이 그렇다. 경험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세계들이 많다는 것을 온몸, 온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이만하길 다행인 것은 맞다. 더 큰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슬픔은 개인적이다. 이런 아픔은 남과 비교해서 아파지지 않는다. 그냥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니까. 가족들 앞에서는 용감하다. 울지 않는다. 울고 싶지 않고.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은 많이 울었다. 잘 지내다가도 울컥하고 올라온 날은 그냥 울었다. 울어 내야 아이들이 오면 다시 웃을 수 있으니까.


시련을 시련으로 두지 않기 위해 날마다 책을 읽었다. 오스틴 와일드의 말 ‘누군가는 진흙탕 속에서 별을 본다’는 그 표현을 잊을 수가 없다. 날마다 좋은 말을 차곡차곡 쌓았다. 내가 언제라도 꺼내 보고 싶어서 블로그에 기록하였고 시간 날 때마다 내 글을 읽었다. 마음속에 슬픔이 차오르고 나쁜 생각이 불쑥 들어올 때마다 좋은 생각으로 갈아내려고 읽었다.


니부어의 기도는 날마다 내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허지웅이 쓴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이 그 당시에도 참 마음 깊이 읽었는데 더 많이 다가왔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세상을 산다. 옷 사고 싶을 때는 사람들 옷 입은 것만 보고,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싶을 때는 헤어스타일만 보고 다닌다. 암에 걸렸다 생각하니 암과 관련된 글들만 읽고 있다. 그렇게 있다간 안 되겠다 싶어서 갑상선 암 수술 준비 후에는 수술과 관련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재의 내 삶에 집중했다.


수술하기 전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서 모닝페이지를 쓰고, 책을 읽고, 아이들 챙기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걷기, 독서, 글쓰기, 집안일들을 했다. 삶은 단조로웠지만 우울하지 않았다. 우울할 틈이 없게 나를 좋은 것들로 채우려고 노력했다.


삶에 예외는 없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오히려 큰 일을 당하니 좀 덤덤해진다. 아주 큰 일도 아닐 수도 있고. 그저 이만하길 감사한 마음으로 지낸다. 감사하기로 했다. 빨리 알아서 다행이고 전이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고 좋은 곳에서 수술해서 다행이다. 모든 게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시련은 나에게 감사와 겸손을 선물해 주었다.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몰랐을 세상이다. 우울과 불안장애로 건강이 안 좋아진 상황에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던 것이라 어쩌면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한다. 내 잘못이 아니라 그냥 그때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삶을 이해하고 나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아픈 나를 인정하고 바꿀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그만하길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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