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 내 삶을 돌아보다
교사에게 3월은 분주하고 바쁜 달이다. 새 학년 새 학기, 설레기도 하지만 할 일이 참 많은 달이기에 정신없다. 교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업무 선택, 학년 반 선택 이 정도이다. 학년 반 선택도 그 해 운이 좋아야 내가 원하는 학년에 배정이 된다. 근무 년 수, 업무 강도에 따라 매년 달라지기 때문에 내가 원한다고 원하는 학년을 받을 일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학년이 다른 교사들도 좋아하는 학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학년 반을 교사가 선택한다고 해서 그것이 교사의 선택인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그 반에 배정된 학생들은 교사가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만 그런가, 그 학생의 부모님들 또한 교사의 선택이 아니다. 업무도 튕기면 다른 업무를 받는다. 3-5년 정도마다 학교를 이동하는데 이동하는 해에 받는 학년, 업무는 더욱더 복불복이다. 모두 운에 맡긴다.
그렇게 운에 맡겨진 채 3월을 시작한다. 2월부터 새 학년을 준비해서 3월에 아이들과의 대면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올해의 운을 점칠 수 있다. 나는 올해 운이 좋은가, 나쁜가.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종업식 하는 그날까지 조심해야 한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길 줄 모른다. 그리고 요즘은 종업했다고 학폭이 멈추지도 않는다. 가끔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종업식을 해도 학폭 민원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평범한 학부모님이라면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알 수가 없다. 내 아이가 평범한데 이런 이야기를 누가 해줄 수 있을까 싶다. 교사들 중에서도 운이 좋으면 모를 수 있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내가 겪지 않았다고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다. 신문에 나는 안 좋은 소식들이 나와 거리가 멀어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듯, 학교의 안 좋은 소식들도 학교 현장에서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겪지 않는 사람들만 모른 채 일어나고 있기에 교권침해를 당한 교사나 학교폭력을 당하는 학생들은 그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없지 않다는 것.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 속의 '한밤의 까마귀가 안 보이더라도 한밤에 까마귀가 어딘가에는 있어. 그렇지? 어둠이 너무 짙어서. 자네 눈에 안 보이는 것뿐이야.'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어둠 속의 까마귀가 안 보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고 옆에서 보지 못했다고 없는 일이 아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일이다. 내가 운이 좋아서 여태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동료를 배려하고 연대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처럼 매년 운에 맡겨지며 일을 하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 싶다. 1년 동안 장기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관리자와 동료까지 바뀌면 업무환경이 90% 이상이 운으로 작용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운 90%를 인정하고 그저 내 앞에 주어진 것들에 성실하게 임하며 학생들을 만나겠지만 우리들의 이런 노고를 조금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신문기사에서 볼 수 있는 내용들을 경험하고 싶은 교사는 없다. 모든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 잘 가르치고 싶다. 어떤 운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났다 하더라도 그 한 해 동안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런 교사들의 마음을 믿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