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 내 삶을 돌아보다
“목 밑에 큰 점이 있네요. 아이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효도 다 했어요.”
큰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으면서 의사 선생님이 아이를 보여주시며 내게 해 주신 말씀이다. 아이의 작은 머리와 2.97Kg의 몸무게는 자연분만을 쉽게 도와주었다. 힘들었을지라도 24시간 이상 진통을 하던 산모들과는 비교가 안 되게 아이는 진통이 오고 4시간 만에 나를 만났다.
모든 게 서툰 나였지만 친정 엄마의 도움으로 잘 키울 수 있었다. 큰 아이만 기를 때는 엄마가 함께 봐주셔서 그 시간들에 기쁜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고 두 아이를 오롯이 나 혼자 키우게 되었을 때 초보 엄마는 날마다 짠내 나는 일상에서 찌들어갔다.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한 시간을 울던 큰 애를 바라보며 내가 무엇을 해 줘야 할지 몰랐고 둘째 보기도 벅찬데 울고 있는 큰 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우는 아이와 함께 울기도 했다. 지금 아이에게 그 시절을 물어보면 기억도 나지 않아 한다.
엄마가 되지 않았으면 몰랐을 순간들이 많다. 자녀를 어린이집에 처음 보낼 때, 처음 유치원을 보낼 때, 초등학교에 보낼 때, 중학교에 보낼 때, 고등학교에 보낼 때... 이 모든 순간들이 너무 떨리고 그 순간순간마다 엄마로서 내 역할을 생각했다. 아이가 두 명이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올해 큰 아이를 고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도 혹시 잊은 것은 없는지 몇 번을 안내문을 읽어봤다.
이 모든 과정이 아이도 나도 처음이지만 아이에게 엄마는 모든 게 익숙해야만 하는 존재 같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의 불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엄마인 나조차 지금 사춘기 아이의 엄마가 처음이라 모든 것에서 서툴다. 다만 짐작을 해 본다.
내가 고등학생 때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더라 생각해 보며 아이 입장이 되어본다. 그런데 그것 또한 쉽지 않은 것이 나의 어린 시절은 너무 없었고, 가난했기에 지금 아이의 입장이 되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이 좋은 환경에서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들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어쩌면 아이에겐 너무 많이 주어져서 숨이 막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 넘어지고 쓸려서 피도 나 봐야 하는데 그런 기회 없이 바닥에 안전매트들을 깔아놓고 키운 건 아닌가 싶다.
아직 엄마로서 나의 여정은 절반도 오지 않은 듯하다. 앞으로의 엄마로서의 과업은 아이들이 어릴 때보다 몸보다 마음이 더 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이제 자신의 씨앗대로 싹 틔우는 중이라서 그런 거라면 내가 마음이 괴로울 일이 있을까? 흔들리며 방황하며 가겠지만 아이는 자신의 씨앗대로 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다려보자고 나를 다독인다. 김미경 대표님의 말씀처럼 ‘걱정 말고 염원하는’ 엄마가 되려고 한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고 메마른 나뭇가지에서 어느 순간 새순이 돋아나듯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신의 꽃을 피우겠지. 엄마는 너희들의 계절이 지나는 그 모습을 바라봐주고 기다려줄게. 많이 방황해도 흔들려도 괜찮아. 다만, 엄마, 아빠가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너희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라는 것을 잊지 마.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많이 부족해서 미안해. 그런데, 엄마도 많이 노력하고 있어. 알지? 우리 잘 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