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았으나 어디에도 나는 없다

마흔 중반, 내 삶을 돌아보다

by 쓰는교사 정쌤

나름 열심히 학교 생활을 하고 자녀들을 키웠다. 갑작스러운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고 학교를 떠나서 나를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아닌 ‘나’만 남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열심히 했던 학급경영도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었고 자녀들을 열심히 돌보며 키웠지만 그렇다고 이 아이들이 엄마에게 죽고 못 살지는 않았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냥 아무 감투가 없는 ‘나’는 누구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독서와 걷기였다. 블로그 챌린지가 있어서 읽고 걷고 쓰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물으면서 읽고 걸었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신규교사 연수에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교육을 했는데 그때는 관리자가 되고 싶은 꿈이 조금 있었다. 그리고 책 한 권 써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육아휴직을 오래 하다 보니 관리자에 대한 꿈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평교사로서 내 반 아이들을 잘 가르치고 내 자녀들 잘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었다.


그렇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흔 중반 이렇게 암이라는 것으로 내 삶을 멈추고 보니 생각보다 내게 남은 게 없다. 나를 증명해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교직 생활 17년 차, 엄마 16년 차 경력에 ‘나’에게 남은 것은 암 걸린 몸과 우울과 불안장애를 가진 마음뿐이라는 것은 슬펐다. 하다못해 책 한 권도 없구나 싶었다.


아, 있긴 있다. 아이들과 함께 쓴 학급 문집 7권. 신규시절부터 담임교사를 할 때는 꼭 만들려고 했던 학급문집, 4권은 나의 사비로 만들고 그다음부터는 학교에서 제본기로 만들었다. 학급 경영비를 활용할 수 없을 때였다. 최근 몇 년 담임 생활을 하는 동안은 학급문집을 못 만들었다.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이다. 다시 담임교사를 할 때는 아이들의 개인 문집을 만들고 싶다. 학급 문집은 아이들의 성과물이니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엮었을 뿐이다.



결국 나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를 더 알아보기 위해 책을 날마다 읽었다. 남들이 추천한 책도 읽고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한눈에 끌리는 책도 읽고 내키면 모두 읽었다. 그렇게 한 권씩 읽어가면서 고등학생 때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나와 만났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항상 ‘왜?’가 많았다.


중학교 입학하고 교실 청소를 하는데 그때는 왁스칠을 하던 시절이었다. 왁스칠을 하며 청소를 하던 내가 친구들에게 “왜 우리가 왁스칠을 하며 청소를 해야 하는 거야?”하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런 말을 했던 내가 기억이 난다. 나는 모범생이었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모범생은 아니었다. 내 안의 ‘왜?’는 불합리함 앞에서 똬리를 틀고 기다렸던 것 같다. 그렇다고 버릇없는 행동을 한 적은 없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비해 겁이 많고 소심했고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기에 머릿속 생각만으로 그쳤다. 그저 비판적 사고를 할 줄 아는 학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마흔 중반의 나는 그런 십 대 시절의 나처럼 나에게 계속 물었다. ‘너는 괜찮아?’‘너는 어떻게 살고 싶은데?’‘하는 일은 좋고?’ 날마다 꾸준히 물었다. 아프다고 모든 걸 손 놓고 살고 싶지도 않았고, 불안과 우울함에 나를 내어주기도 싫었다. 그래서 꾸준히 독서와 걷기를 하며 나를 단단하게 채워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를 다짐하고 시작해도 어느 날은 무너지고 남편과 아이들이 없는 집에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이 모양인데. 더 어떻게 살라는 거지? 하는 생각이 나를 감쌀 때는 그냥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면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다 울고 나서는 ‘그래도 살아야지. 잘 살아야지.’ 하면서 눈물을 닦고 집 청소를 했다.




나의 2022년은 그렇게 방황하던 해였다. 방황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다만 누구나 어느 때건 방황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방황한다는 것은 너무 많은 일들 사이에서 나를 중심에 두고 정리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준 것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열심히 살아도 그렇게 아무것도 안 남은 날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얼마 전에 읽은 [김미경의 마흔 수업]에서 그 답을 찾았다.

“40대로 돌아가 하루를 단면으로 쪼개어 보면 멀쩡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 예상한 대로 돈을 벌고, 커리어를 쌓고, 아이들이 자라줬으면 좋으련만 늘 인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힘들게 열 개를 만들어놓으면 여덟 개가 사라지고 두 개만 쌓였다. 아이에게 10만큼 노력해도 2만 남고, 돈을 벌려고 10만큼 노력해도 손에 쥐는 것은 2가 전부였다. 그래도 내가 만든 판이고 돌아갈 곳도 없으니, 그저 하루하루 버텼다.

문제는 너무 힘든 ‘그날’이다. 악으로 깡으로 그럭저럭 살아내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훅 무너져내리는 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던 그날의 한가운데에 있는 마흔의 나에게 꼭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p.292-293, 김미경, [김미경의 마흔 수업], 어웨이크 북스


어쩌면 나는 너무 힘든 ‘그날’에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훅 무너져내리는 날, 그 가운데에 있어서 힘들었던 것 같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고 천천히 가도 돼. 지금 너의 마흔은 힘든 만큼 매일 괜찮아지는 중이야.”

-p.293, 김미경, [김미경의 마흔 수업], 어웨이크 북스


그 힘든 시기에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내가 더 도드라져 보였나 보다. 그래서 이제 ‘나 좀 보고 살자’고 이야기했나 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엄마로서의 시간들, 교사로서의 시간들은 내 몸과 마음에 모두 저장되어 있다. 내 수많은 세포들 속에서 172번째, 397번째처럼 몇 백 번째의 셀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이 힘든 시간들이 지나면 또 꺼내어 쓰면 된다. 그러니 지금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었어도 너무 억울해하지 말자. 다 내 아이들 몸과 마음속에 씨앗을 뿌렸고 나를 만난 아이들에게 나를 내어주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 좋은 생각을 담고 있는 내가 남았다. 그걸로 충분하다. 다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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