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자기에게 끊임없이 밀려와서 부서지지만, 그 자신은 견고히 서서 주변의 용솟음치는 바닷물을 고요하게 만드는 해안의 넓은 바위처럼 돼라.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은 내게 불운이다"라고 말하지 말고, 도리어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나는 현재 일어난 일 때문에 망가지지도 않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두렵지 않으며, 이렇게 아무런 해악도 입지 않고 멀쩡한 것은 내게 행운이다"라고 말하라.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누구나 그런 일에도 불구하고 해악을 입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너는 왜 전자를 생각해서 불운이라고 말하면서, 후자를 생각해서는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냐.
... 너는 인간의 본성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미 배워서 알고 있다. 인간의 본성의 목적은 정의롭고 고결하며 절제하고 지혜로우며 사려 깊고 정직하며 겸손하고 자유로운 것,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완성시켜 주는 그 밖의 다른 특질들을 추구하는 것인데, 네게 일어날 그런 일이 네가 그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더냐. 앞으로는 다음과 같은 원리를 마음에 새기고 있다가, 네가 해악을 입었다고 느끼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 원리를 굳게 붙들어라: "이 일은 불운이 아니다. 도리어 이런 일을 겪는데도 내가 나의 본성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내게 행운이다."
[명상록]-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으며 시련을 넘기는 자세를 배우고 있다. 학급에서의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럴 때마다 넘어지고 상처가 나서야 될까 싶다. 어떤 것들은 넘어지고 쓰러질 정도로 타격감이 큰 것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어나서 상처를 닦아내고 치료하고 내 길을 가야 한다. 여기에서 피해자가 될 필요가 없다.
명상록에서 위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더 단단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정의 거리를 두고 가르치며 필요 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장을 바꿔 소리 내어 읽어본다.
"이 일은 불운이 아니다. 도리어 이런 일을 겪는데도 내가 나의 본성을 지켜내며 가르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야말로 내게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