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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모님, 마리아

by 쓰는교사 정쌤

마리아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나의 대모님이다. 2016년 교리 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은 날부터 나는 마리아를 통해 기도를 배우고 있다. 당시에는 가까이 살아서 자주 보았지만 요즘은 가끔 본다. 이번에 만났을 때는 내가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2년 만에 본 것이다.


마리아를 만났을 때 마리아는 묵주와 책, 성모마리아 엽서, 9일 기도서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마리아가 선물로 주어서 읽게 된 것이다.(이 책을 읽고 정말 좋아서 선물하기 위해 두 권을 샀다. 내가 받은 것들을 흘려보내려고. 마리아는 이 책을 다 읽지도 않고 좋아서 선물을 했다고 했다. 이 책이 나에게 온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리아가 말했다.

"언니 나는 내가 전업으로 집에 있다 보니 우리 딸에게 가르쳐줘야 할 것을 못 가르쳐 줄까 봐 걱정했어요. 그런데 성당일을 하다 보니 사회생활과 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성당일을 하면서도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워요. 우리는 이제 이렇게 나이 들어가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잖아요."


나는 마리아의 이런 말들이 참 좋다. 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말들이 마리아의 입에서 직접 나와서 내 귀에 꽂힌다. 그러다 보니 마리아에게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하게 된다.


"마리아, 우리 반에 정말 이쁜 아이가 있었어. 그 아이가 운동선수 활동을 위해서 12월 말에 전학을 갔어. 이 아이가 학교를 얼마나 일찍 왔는지 몰라. 내가 8시 10분 정도에 학교에 도착하는데 어떤 날 8시 40분쯤 오더니 그 후엔 8시 30분, 그 뒤엔 8시 25분 정도에도 오는 거야. 그래서 왜 이렇게 일찍 오냐고 물었더니 학교가 너무 좋다는 거야. 그래도 너무 빨리 오면 위험하니 안된다고 말했는데도 계속 일찍 오기에 그다음에는 그래 네가 좋다면 일찍 와라 하는 생각으로 그냥 두었지. 아이가 전학을 갈 때 나를 만난 게 좋은 추억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문구류와 공책,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쓴 독서록에 대한 상으로 새 독서록을 주었어. 또 운동선수 활동을 위해서 가는 거라 [5번 레인]이라는 책을 사서 카드와 함께 포장해서 선물로 주었어. 아이를 전학 보내고 나 스스로 아이에게 잘해준 것이 기특하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가 나를 많이 도와주고 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아이가 언제나 제일 먼저 학교에 와서 나를 반기면서 인사해 주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세워주고 아껴주고 갔구나 싶었어. 내가 그 아이에게 천사선생님 해 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아이가 나에게 천사였던 것 같아. 지나고야 알겠더라고."


이 말은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이었는데 마리아에게 하면서 눈물이 났다. 그 아이 덕분에 지난 일 년을 참 잘 보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참 많은 위로와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리아가 해 준 말들은 너무나 좋아서 가슴에 잘 담아두려고 애쓴다. 마리아와 만나는 날 기꺼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건 나의 기쁨이다. 그런 마음을 알고 마리아는 나를 위해 선물을 이것저것 준비해서 준다. 마리아가 준 선물들을 받으면서 말했다.


"마리아, 나 이렇게 받는 게 너무 기쁘고 고마워. 나도 다음엔 더 많이 준비해서 올게."

"언니, 나에게 주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줘요. 우리끼리 주고받지 말고 다 흘러가게 해요. 선순환을 만들어요."

"예전에 제가 자매님 집에 놀러 갔다 나오는 길에 선물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선물을 또 주시냐고 말씀드렸더니 '다음에 자기네 집에 오는 사람 있으면 또 기쁘게 선물을 주라'라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언니, 저도 언니가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 말씀 너무 좋다. 나도 그럴게. 우리끼리 주고받는 것보다 흘려보내는 것, 참 좋다."


그리고 마리아와 주고받으며 했던 말들 중 기억나는 마리아의 말을 기록해 본다.


"언니,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은 나밖에 없어요. 내가 내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내가 나를 아프게 하지 않으면 되는 거래요. 그러니 나를 아프게 하지 말아요."

"언니가 그렇게 힘든 순간에도 언니를 지키는 무엇이 있어서 그때그때 도움의 손길이 있었나 봐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신은 우리를 돕고 있는지 모른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모습을 바꾸는 삼신할머니나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에서 할머니의 모습을 한 천사의 모습처럼 우리 주변에서 천사가 수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와 반대인 경우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드는 것일까, 이제 곧 나이가 50이 가까워져 지천명의 순간이 와서 그런 것일까. 세상 속에서 조금 더 이로운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크다. 자녀를 잘 기르고 내 가정을 잘 가꾸는 것만큼 내 이웃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천사는 못 되어도 천사 날개의 깃털 한 장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 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에서 파뿌리 하나로도 천국에 간다고 했으니 그 마음이면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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