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by 쓰는교사 정쌤


얼마 전 초등학교 신규교사의 죽음을 접하면서 그나마 가던 길을 헤매고 있었다. 교권이 무너졌음에 호소하는 글들을 몇 번 썼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를 하겠다고 복직을 준비하며 어떻게 할까를 구상했다. 신규교사의 죽음 소식을 접하고 나니 교직에 희망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글에서 ‘아무래도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려나 보다’라고 했는데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이 생기고 나니 더 참담했다. 한없이 무력감에 빠져들었고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었다. 분명 선생님들께 자신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저널을 쓰자고 이야기했었는데 사람이 죽은 이 상황에서 글쓰기가 도움이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글을 쓸 수도 없었다. 열심히 하자는 말을 더는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나는 왜 교사를 계속 하고 싶을까’를 생각했다. 왜 교사여만 하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그 시간들이, 아이들이 나와 함께 배우며 성장했던 그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힘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아이들은 성장했고 고마워했다. 상식적인 학부모들의 감사인사는 힘듦을 이겨낸 보상이었다. 아이들의 그림들과 사랑을 전하는 쪽지들, 꼬깃꼬깃한 종이접기들, 돌봄교실에서 보내다가 쉬는 시간이라고 선생님이 보고싶어 왔다는 아이들,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과 접촉하는 일을 조심했는데 그래도 손을 잡고 싶어 했던 아이들, 하교시간 반가움에 와락 달려와 안는 작년 아이들... 그 많은 아이들을 기억하기에 나는 아직 교사이고 싶다. 그렇다고 힘든 학생들을, 힘든 학부모들을 만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 힘든 경험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나를 사랑하고 잘 따르던 아이들과의 추억이 더 큰 것이었다.


내 마음은 이렇지만 사회가 변했음을 다시 뼈저리게 느꼈다.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만큼 교사로 살고 싶은지를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여전히, 아직은 교사이고 싶다. 그 생각에 다다르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규 교사의 죽음을 보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는 내가 될 수도 다른 동료교사가 될 수도 있다. 교사 개개인이 막던 문제들이 하나씩 터져나오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일어나던 일들이 임계점을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으면 교직의 미래는 더 암담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기로 했다. 단체행동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쓸 힘이 생겼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원망하고 속상해하며 시간을 죽일 수는 없다. 교권이 추락된 현실을 알려야 한다. 문제학생이 있으면 얼마나 힘든 환경에서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하는지, 교사가 그 부분을 돕지 못하는 이유들을 알려야 한다. 교사 개인이 알릴 것이 아니라 수많은 교사들이 각자의 교실 이야기로 알려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할 일을 해야 한다. 글쓰기에 아무 관심도 없는 교사들에게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자고 말해야 한다. 어디에든 자신의 치유와 성장을 위한 저널링을 하자고 이야기해야 함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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