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신규교사의 죽음을 접한 지 19일이 지났다. 그 주부터 토요일마다 교사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추모집회를 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 선생님의 간절한 마음이 거리로 나서게 했고 그 글에 많은 교사들이 공감하며 모이게 되었다. 경찰 추산 만 명이 집계된 추모 집회는 질서 정연하게 신규교사의 마지막을 덜 외롭게 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집회는 1차 5000명, 2차 3만 명, 3차 5만 명으로 모이는 교사들의 수도 많아졌고 참여하는 집단도 더 다양해졌다. 전국의 교감선생님과 교장선생님들도 함께 나서 주시고 서울교대 교수님들의 참여도 있었다. 어린 고등학생의 발언도 있었다. 많은 교사들은 신규교사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처럼 가슴 아파했다. 그렇기에 추모 공간에 있던 쪽지의 ‘나는 당신입니다.’라는 글은 교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교권침해 관련 뉴스들이 많아지고 이 사건에 대한 제보들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 이주일 동안은 우울감과 무력감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보내는 날이 많았다. 해야 할 일을 하지만 나를 위해, 내가 애써서 하던 일들이 모두 멈춰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팀 페리스의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를 읽게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울감과 무력감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더 이상 변명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힘든 환경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원망하는 목소리를 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의 관점을 나에게로 돌렸다. 나부터 시작해 보자는 생각을 하니 ‘그래 지금부터 하는 것들은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하고 다짐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교사였다. 병을 치료하고 나서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교직이어서 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나는 능동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삶의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처음에는 왜 많은 교사들이 모이지 않는 것인가 속상하기도 했다. 왜 열심히 하는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일까 화가 났다. 억울함과 분노가 쌓이는 내 모습에 또다시 화가 났다. 왜 나는 작은 행동 하면서 화를 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 이면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나부터 생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위해, 나의 소중한 자녀를 위해 거리에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하는 행동에 너무 큰 의미부여를 하며 스스로 희생양을 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각자의 몫을 해 내는 게 중요하다. 남에게 자신의 짐을 짊어지게 하지도 말고 무임승차도 하지 말자. 각자의 자리를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눈이 많이 오면 각자 집 앞 도로의 눈을 치우는 것처럼 내 집 앞 도로의 눈을 치우는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나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로 했다. 3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내 아이들이 교사로서의 희망을 간직한 담임선생님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억울함과 분노는 가라앉고 오직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거창한 일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저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알려주고 안전한 교실에서 즐겁고 신나게 배움이 일어나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내 자녀들도 그런 교실에서 마음껏 공부하길 바란다.
팀 페리스는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에서 ‘인생의 진짜 실세는 ’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다.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에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경청할 것인지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수준이 곧 나의 현재 모습이다.’라고 했다. 내 안에 귀를 더 기울이고 나부터 시작하여 내 삶에 변화가 시작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이 누군가의 삶에도 변화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가 당신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