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고 가르칠 수 없기에 거리 위에 섰다
<사랑하지 않고 노동할 수 있기를>(2023.08.20. 김현호 사진비평가, 경향신문) 칼럼을 읽었다. ‘사랑하지 않고 노동할 수 있기를’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필자는 작은 출판사 대표이다. 책을 만들며 밥벌이를 해온 시간이 가장 길었다고 한다. 첫 직장은 서른 살이 조금 넘어서 입사한 출판사로 두꺼운 학술서를 만드는 곳이었다고 한다. 서투른 팀장으로 일하며 팀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꽤 착하게 행동했지만 어떤 ‘구조적인 미안함’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회사를 떠날 때 동료는 좀 변죽 좋게 살아도 괜찮다는 충고를 건넸다고 한다. 몇 년 전 아름다운 책을 만들던 선배가 신문에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고 한다. “책을 사랑해서 일하기도 하지만 책을 사랑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한다”는 구절이 필자의 가슴을 무겁게 내리눌렀다고 한다. 그리고 필자는 말한다. 책 만드는 노동은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한다고. 노동자들은 사랑의 이름을 등에 업고 돌격한다고. 기이한 풍경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교사들의 모습을 보았다. “책을 사랑해서 일하기도 하지만, 책을 사랑하지 않으면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한다”는 말을 “아이들을 사랑해서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한다”는 말로 바꾸어 보았다. 교사들은 어릴 때부터 교사가 꿈이었던 사람들이 많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아이들의 모습에서 사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가르치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학생들이 있다. 몇 년 전 함께 근무하던 선배교사가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겠어.”하시며 아이들을 신나게 가르치셨던 것이 기억난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게 아이들과 재미있게 지내셨다. 그리고 그 해에 학부모의 민원으로 명예퇴직을 하셨다. 가르치는 일이 항상 즐거운 상황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 교권침해, 아동학대 고소에 지금 학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알고 있다. 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 일이 힘들다는 것을. ‘책 만드는 노동은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한다’는 필자의 말처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몇몇 학부모는 불신의 눈으로 항상 교사들을 감시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아이만을 위한 요구를 한다.
지금 거리에 나오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교사들이다. 5주째 교사들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노래도 직접 작사하고 작곡하고, 수많은 자료들을 교사들이 직접 만들고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모두 자원봉사로 하고 있다. 나는 그저 거리 위의 하나의 점일 뿐이다. 그 교사들을 보면서 무엇이 교사들을 이렇게 움직이게 할까를 생각해 봤다. 너무나 미련해 보일지 몰라도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칼럼을 보면서 교사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치는 일, 특히 성인이 아닌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가르치는 자의 가치관과 철학, 태도 등 모든 영역이 전달되기 때문에 더욱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교직에서 사라져 가는 그 사랑의 불씨를 거리 위에서 보았고 여전히 그들이 있어서 어쩌면 희망을 조금 더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 위의 교사들이 힘을 잃지 않도록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였으면 좋겠다.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면 사랑을 품은 교사들마저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미 학교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