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을 만났다. 우연히 또 다른 동료도 그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그 동료가 보여준 관리자 연수 동기 사진에서 신규 시절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 사진을 보면서 10년이 넘는 시간 승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니 결국 승진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동갑인 시누이도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세무서에 근무를 하는데 내년이면 발령이 날 것이라고 한다. 시누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고생했는지 알기에 추석 때 봉투를 준비해서 승진축하금을 전해 주었다. 시누이의 모습이 참 많이 편안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관리자 연수를 받고 난 동료의 모습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니 승진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승진길에 올라있다는 것을 직접 보게 된다. 그렇다고 승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나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승진에 뜻을 두지 않았기에 육아휴직을 오랫동안 하며 두 아이를 내 힘으로 키웠고, 복직을 해서도 바쁜 회사원인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며 가정과 일을 모두 챙겼다. 승진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승진하는 사람들도 힘들었겠지만 가정과 일 모두를 챙긴 나도 무척 애를 썼다.
'너도 승진준비를 하지 그랬어?' 하고 묻겠지만 나는 승진이 끌리지 않았다. 신규 발령받기 전 연수를 갔을 때 잠시 관리자가 되어볼 생각을 해 본 적은 있지만 교단에 서고 나서는 관리자의 자리가 내 자리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교사이고 싶었고 좋은 교사로 정년까지 가르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지냈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다가 안전하게 퇴직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명예퇴직이 될지, 정년퇴직이 될지는 모르지만 떠나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할 것이기에 미련 없이 떠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떠나게 된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때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승진을 한 그들의 길도, 승진을 택하지 않은 나의 길도 모두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몫의 길을 잘 갈 것이다. 승진이 아니라면 어떤 모습의 교사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학교에서 교실생활을 하는 교사들의 모습은 다들 비슷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나다운 차이'를 만들어낼 것인가. 학교 생활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나는 요즘 일어나는 학교의 문제들이 너무 마음 아프다. 그저 순응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승진하는 사람들은 순응할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평교사로서 내 교직생활을 마감할 것이기에 바르지 않은 시스템에 목소리를 내고 싶다. 뜨거운 여름을 거리 위에서 많은 교사들이 목놓아 외치게 했던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여전히 진상규명되지 않고 있다. 꼼꼼하게 기록하는 교사가 아무것도 안 남겼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급경영록을 쓰고 다이어리를 쓰는 교사는 나이스 생활기록부에 기록도 꼼꼼하게 한다. 기록만이 나를 증명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일본의 공교육 현장은 많이 무너져있다. 우리나라는 지금이 변곡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처럼 교육을 서비스로 생각해 갈 것인지, 유럽처럼 교육을 공공재로 생각하며 갈 것인지 그 변곡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희망을 갖는 이유는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마음속에는 정의에 대한 열망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썼고, 민주주의를 위해 애썼고, 힘든 경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까지 참여하며 애썼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의 무너지는 공교육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교육만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잘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법과 제도로서 교육을 살리는 일을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
학생들과 평화롭고 즐거운 교실 생활을 하고 싶은 평범한 교사의 목소리를 내는 교사이고 싶다. 나부터 잘하는, 나부터 잘 실천하는 사람이고 싶다. 더 나아가 평화롭고 즐거운 교실생활을 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 쓰는 교사가 되어 작가로서의 삶도 함께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