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마흔 중반, 내 삶을 돌아보다

by 쓰는교사 정쌤

ChatGPT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개발자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개발을 했을 텐데 일반인인 나는 이제야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챗지피티를 이용해 본다. 아이들이 하나의 지식을 더 아는 게 의미가 있나 싶다.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현재 논의되고 도입되기로 한 IB 교육과정이나 고교학점제와 같은 제도가 실효성이 있으면 좋겠다. 변화를 뽐내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진정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을 돕는 제도이길 바란다. 그것을 실행할 교사들에게 제대로 된 안내와 그 안에서의 소통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상명하달이 아니라 서로 교육정책을 위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나의 생각은 바람일 것이라는 것을 안다. 정책은 상명하달의 방법으로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을 해보지 않은 자들에 의해서 정책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니까.

교육을 위해 진정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과밀학급 해소는 예전부터 말해왔지만 도시에서는 여전히 과밀학급이고 급당 인원이 너무 많으니 개별적인 교육이 어렵다. 그 와중에 학부모들의 개별적인 요구사항은 많아지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서 학부모들은 학교에서도 많은 서비스를 바란다.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만을 바라보는 교육을 원하지만 교사는 서른 명에 가까운 학생들 모두를 바라보는 교육을 해야 한다.

교육에 서비스 정신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올바른 교육을 하는데 소비자가 원하지 않으면 옳은 것을 그르다고 가르치면 될까? 그럼 괜찮은 건가? 예전 영화 ‘유전무죄, 무전유죄’처럼 현실은 그런가.

요즘 학교는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겠다. 일개 교사는 교사들끼리라도 뭉쳐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교사와 승진이 아닌 평교사의 삶을 살고자 하는 교사의 마인드는 다르다. 그럼 승진을 안 하는 자들은 월급 루팡인가? 나는 승진할 생각이 없는 교사다. 그렇다면 나는 교육을 좀먹는 교사인가? 아니다.


나는 매년 연수를 듣고 아이들과 수업을 할 때 수업 연구도 많이 한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수업을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많이 했다. 두 학교에서는 내리 학급문집을 만들며 아이들의 삶을 하나의 결과물로 내려고 노력했다. 학급문집 만들기를 멈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학부모들의 욕구가 다른 것을 알고 나서다. 나는 아이들에게 좋으라고 한 것이 학부모 입장에서는 비교된다고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멈추었다. 그리고 몇 해 더 담임을 하며 생각한 것이 개별 문집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시 학교에 복귀해 담임을 한다면 아이들의 개별 문집을 만들고 싶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와 글쓰기는 즐겁게 지도할 생각이다.

우리가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생각을 잘하기 위해서는 좋은 글을 읽어야 한다.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에 적합한 방법은 글쓰기다. 내가 글을 직접 써보니 더욱 그렇다. 이 글들이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글을 쓰면서 나라는 사람의 생각이 정리가 됨으로써 그 역할은 다했다 생각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따지는 사회에서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히려 비효율이 아닐까 싶다. 사교육비를 무진장 때려 넣어서 가르치는 비효율 말고 시간을 들여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놀면서 비생산적으로 시간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특히 그렇게 무용의 시간, 무생산의 시간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특권을 누려본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현장에서 이렇게 무용의 시간을 보내게 하기엔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 또한 학부모로서 그렇게 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국영수를 많이 하게 해서 그 아이가 갈 수 있는 최고의 대학을 갔을 때 아이는 그 삶이 행복할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아이가 아직 그 정도로 크지 않았고 나 또한 그렇게 공부한 사람이 아니어서 모르겠다.

나는 환경이 어렵긴 했지만 어쨌든 그 환경 내에서 내 가슴을 좇는 일을 찾아온 사람이라서 여전히 꿈을 이야기하고 꿈을 꾸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야 살만하다고. 내 자녀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라 하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가슴속에 좋아하는 것들의 씨앗을 심으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내 마음속을 꿈틀거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나를 살리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한다면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돈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돈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고명환 작가는 내 마음속의 암컷 나방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나는 아직 교직이 내 마음에 있어서 그 안에서 나의 암컷 나방을 좀 더 어떻게 만나볼까 궁리 중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온 나방의 이야기이다.

“나방이 별이나 혹은 그런 무언가에 제 의지를 쏟으려 했다면, 그건 이룰 수 없었을 거야. 다만 나방은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는 거지. 오로지 제게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 제가 필요로 하는 것, 꼭 가져야 하는 것만 찾아.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일도 이루어지는 거지.”


수컷 나방은 자신의 소명을 안다. 자신의 목표는 어디에 있는지 모를 암컷 나방을 만나 짝짓기를 하고 자신의 2세를 생산하는 것이다. 목표를 알기 때문에 한눈팔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별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해도 쳐다보지 않는다. 수컷 나방의 모든 신경은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암컷 나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렇게 다른 이들이 좋다고 말하는 목표가 아닌 나 자신만의 목표를 찾아 떠날 때 기적이 일어난다.

나만의 ‘암컷 나방’을 찾아야 한다. 방향이 제대로 맞으면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기적도 일어난다.


-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고명환 지음, 라곰




우리 아이들에게도 암컷 나방을 찾는 교육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텐데 아이들은 여전히 좋은 성적을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물줄기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물줄기가 어렵다면 물방울로라도 시작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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