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되고 싶은 기록, 적자생존!

2026년 1월 8일 목요일 날씨: 햇빛을 담뿍 받아도 추웠던 날

by 대차게해봄

오늘은 이슬아침부터 ‘3,650일 매일글쓰기’라는 굉장한 이름의 한글 파일을 정리할 계획이었다. 나는 글로 드러나지 못한 조각글은 문서 맨 뒤에 쟁여놓는 버릇이 있다. 냉장고 제일 안쪽에 숨은 반찬통처럼. 오늘은 과감히 비울 참이었다. 한글 창 오른쪽 스크롤바를 쭉 당기니, 반짝, 한 조각이 나를 반겼다.



2024년 8월 6일

딸이 처음으로 내 등을 밀어준 날

“엄마, 아빠보다 내가 더 시원하지? 그래도 아빠한테는 굳이 그런 말 하지 마. 아빠가 섭섭해할 수도 있잖아.”

이런 육아 기록. 쓰지 말라. 아무도 관심이 없다. 출판계에서도 육아 에세이는 일단 거르고 본다. 딱 그 연령대 자녀를 둔 엄마나 궁금해하는 글이다.

그런데도 나는 쓰려고 한다.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하지 않은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나를 위한 일을 하다가, 그 일이 어쩌다 남을 위한 일이 된다면 땡큐고, 그렇지 않다면 어쩔 수 없다.


하필이면 딱 어제, 육아 에세이가 되고픈 육아 일기를 써댔다. 쓰면서도 계속 검열했다.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으며 주관적인 나의 말’을 글로 올려도 될까. 내가 나를 편집자처럼 째려보았다. 그런데 2024년에 살았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냥 써. 그게 네가 살아낸 방식이잖아.

이 기록 덕분에 오늘 새벽은 달곰했다. 토끼 꼬리처럼 몽실한 손에 노란색 때밀이를 낀 포도, 그 쪼맨한 입에서 나온 말랑한 언어, 남편보다 더 시원해서 감격적이었던 순간이 살아났다. 그 순간을 남겨뒀더니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복리 이자가 붙어 오늘은 더 큰 감동이 되었다.


나만의 기록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글이 되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할까. 내가 그 요건을 찾을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지금 확실히 알고 있는 건 하나다.


적자생존. 적어야 산다.

그래서 더 적는다.

더 잘 살기 위해서.


오늘은 삭제하려던 문장이 나를 더 잘 살게 했다.


<대차게해봄>

겨울 방학 둘째 날도 기록해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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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미 인풀루언서의 딸의 될 자질이 충분하구나. 자체 모자이크도 할 줄 알고. 허나, 애미는 아직 멀었단다.


엄동설한에 놀이터에서 놀고 와 같은 책상에 앉아, 너는 뭐라도 그리고, 나는 뭐라도 쓰고, 그랬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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