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0일 토요일 날씨: 눈 조금
오늘은 일 년 동안 함께 했던 ‘어떤 글방’의 마지막 날이었다. 유료 글방에서 처음 만나 과정이 끝난 뒤 선생님 없이 우리끼리 굴렸다. 나와 글벗 셋이 ZOOM으로 모여 한 달에 한 번 합평회를 가졌다. 느슨했지만 팽팽했고, 편안했지만 진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월 마감을 쳐냈다!
두두는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문장으로 글을 밍밍하게 시작하곤 했는데, 마지막 마감 글에서는 독자의 멱살을 잡아끄는 첫 문단을 썼다. 미미는 늘 성실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건강하고 용감한 글이었다. 나는 가끔, 미미가 글 속에서라도 난봉꾼이 되면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수수는 섹시했다.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문장을 미친 듯이 써냈다. 수수는 오늘 이런 말을 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못 쓰겠어요. 좋은 글이라고 평가하는 저의 기준이 달라졌거든요.”
수수야, 네 버릇 남 주지 마. 나는 독자를 홀리는 그 문장이 외우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수수는 더 잘 쓰고 싶어 했다. 더 잘 쓰고 싶은 사람만이 자신의 기준을 바꿀 수 있는 법이다.
우리는 사실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었지만, 그만하기로 했다. 매월 합평회 때 나오는 말이 조금씩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반복은 성장이지만, 어떤 반복은 정체다. 우리는 결단을 내렸다. 이제는 다른 우주로 떠나 우리의 세계를 더 확장하기로 했다.
“우리 조만간 얼굴 한 번 봐요.”
“나, 출간 계약서 쓰면 연락할게요.”
“다른 글방에서 만날 것 같아요. 그때 모른 척해요. 대신 뒤로는 아는 척하기!”
글쓰기는 철저하게 혼자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같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돈도 안 되고 시간만 홀랑 빼앗아 먹는 이 무용한 글쓰기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미미가 말했다.
“퇴근하고 피곤한 몸으로 글 쓸 때마다 이런 생각 많이 했어요.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쓰고 있는 걸까.”
나도 뭘 위해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삽질하는 시간이 나를 살려버릴 때가 많다. 전업주부의 하루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로만 꽉 차서 내가 뻑하면 소멸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글 쓰는 시간만큼은 내가 온전히 살아났다. 특히 마감 몇 시간을 앞두고 내 옆에 ‘일단 닥치고 쓰는 동지’가 있으면, 그건 자동 글쓰기 효과를 발휘한다. 누가 시키지 않은 마감을 우리는 왜 이렇게 성실하게 쳐냈을까.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다. 이 무용한 시간을 계속 쌓아야 언젠가는 유용해진다는 걸.
어떤 글방의 수료식에는 상장도 꽃다발도 없었다. 대신 ‘회의 나가기’ 버튼만 있었다. 두 손을 씩씩하게 흔드는 네모 칸이 하나씩 사라졌다. 이상하게 그 순간이 제일 든든했다. 헤어졌지만 새로운 출발 같았다.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더 좋은 걸 채우러 나가는 길이었다.
수료식이 끝난 후 창밖에는 눈이 조금 왔다. 과하게 쌓이는 정도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대충 오다 만 눈은 아니었다. 딱 우리 같았다. 일년 동안 매월 한 편씩 쓰기는 썼다. 열정을 불태우지는 않았지만, 불씨를 꺼트리지도 않았다. 그게 중요했다. 그래서, 잘했다.
<대차게해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뭐든
+
일 년 뒤에 구글 포토가 우리를 추억해 줄 거라며 급하게 사진을 찍었다. 모두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