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1일 일요일 날씨: 한겨울
한겨울 일요일 아침부터 소설<여름>을 한창 읽고 있다. 여주인공 채리티는 남주인공 하니의 입맞춤에 그녀 몸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것들이 온 힘을 다해 빛을 향해 꿈틀거리더니 햇빛 속의 꽃처럼 활짝 피어올랐다(p.169). 어느 날 친구로부터 하니가 애너벨 볼치와 약혼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채리티는 상황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무 쓸모 없는 일처럼 여겨졌다. 채리티는 지금껏 적응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다만 부러지고 찢기고 파괴될 따름이었다(p.203).
내 귀에는 소음을 차단해 주는 이어플러그가 꽂혀있지만, 거실을 장악하고 있는 ‘Sheriff Labrador’ 영어 영상 소리가 흐리게 스며든다. 도대체 남편은 뭘 하고 있기에 1시간이 넘도록 포도에게 영어 영상을 허락해 주고 있는 걸까. 오늘은 남편에게 포도를 맡기기로 했다. 애써 상관하지 않기로 한다.
여유로운 일요일 오전이다. 그런데 불안하다. 막 읽어버린 채리티의 절망 때문일까, 터질 리 없는 빨래 바구니가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일까, 우리 고장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모른척해야만 살 수 있는 그 염려 때문일까. 매일 이 무용한 읽고 쓰기를 계속 해도 되는 걸까. 시어머니께서 나를 보신다면 워킹맘인 본인의 딸을 안타까워하며 “시집 잘 왔네.”라고 또 말씀하시겠지. 그 말에 불안은 더 정교해지고 뚜렷해진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편안해도 되는 걸까.
어제부터 냉장고에서 해동 중인 연어를 노릇하게 굽고 가지런히 회로 썰어내야지. 그러면 조마조마함이 잠잠해질 수도 있겠다. 살림은 결과가 확실하게 보장된 일이다. 하면 무조건 된다. 그 확실함 덕분에 나는 ‘무지개만큼이나 실체가 없는(p.196)’ 꿈을 꾸며 산다. 손에 단단히 잡히는 일을 한 뒤, 다시 잡을 수 없는 일로 돌아와야겠다.
<대차게해봄>
그래도 읽고 쓰고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