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7일 토요일 날씨: 난방텐트 안은 따뜻해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속까지 행복한지는 모를 일이다. 겉은 반짝이지만 속은 조용히 삭고 있을 수도 있다. 행복은 겉옷과 같아서 다른 사람 눈에만 말끔하게 보일 뿐이다.
오늘 나는 꽤 행복해 보였다. 포도와 늘어지게 늦잠을 잤고, 늦잠을 자고 나서도 뒹굴었다. 뜨뜻한 물을 펑펑 틀어 반신욕을 했고, 곰탕에 한우를 삶아 수육을 해 먹었다. 그리고 포도에게 3시간이나 책을 읽어줬다. 책<만화 한국 신화>였다. 삼승 할망, 저승 할망, 마마신 이야기가 어찌나 재밌는지, 도파민이 난방텐트 안에 가득 찼다. 내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고, 포도는 조마조마한 듯 두 손을 꽉 맞잡고 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책에 빠져 있는 동안 남편은 운동했고, 설거지와 거실 정리를 했다. 누군가 봤다면 말했겠지. 참 다복한 가정이라고.
하지만 내 속은 별로였다.
“내가 이번에는 기대를 좀 했거든. 근데 의사가 또 준비하라 카드라.”
어제, 아빠의 검사 결과를 들은 엄마는 또 울었다. 나는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 대신 MRI와 CT, 혈액검사 결과를 ‘온톨’ 앱에 올린 후 해석을 읽었다. 항암제, 각종 수액, 온열 치료, 헤리 주사, 엄마의 삼시세끼, 그 모든 정성이 무력해지는 내용이 있었다. 간에서 시작된 암은 폐로 옮겨가더니, 거기서도 자라는 중이었다. 아빠만 아프면, 나는 괜찮았을까. 일정을 떠올렸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내 오른쪽 무릎 때문에 병원, 다다음 주 수요일에는 포도의 혈소판 수치가 낮아서 병원. 1월 달력에 ‘병원’이라는 단어가 일곱 개나 있었다.
책에서 삼심 할망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이승과 저승이 있듯,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거라고. 삶에는 질병, 시련, 고통이 반드시 따라오고, 그걸 견뎌내는 힘이 필요하다고. 한 번 이겨내면 다음 싸움에서 쓸 힘이 생긴다고. 그래서 마마신(질병의 신)이 존재한다고.
6살 포도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나에게는......
그 말이 ‘병을 이겨내자. 파이팅!’으로 들리지 않았다. 원래 삶은 그렇다는 설명이었다. 겉은 행복해도 속은 문드러지는 거,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다. 다만 다행히, 문드러지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빠가 1년 6개월 남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소리 내어 엉엉엉 울었다. 2개월 남았다는 말 앞에서는 소리를 잃고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어제는 울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내가 냉정해진 걸까. 아니면 속이 단단해진 걸까. 삶과 싸워봐야 문드러질 것이 뻔하니, 덜 문드러지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이 모든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걸까. 어쩌면 단단해진 게 아니라, 생로병사, 중생이 겪는 네 가지 고통을 가볍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난방텐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잠든 남편과 포도의 체온이 내 속까지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그 따뜻함이 현실을 바꾸지는 못해도, 나를 덜 고통스럽게 그리고 더 가볍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대차게해봄>
생로병사 마저도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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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어른에게도 추천하는 만화책입니다. ^^
그리스로마 신화만 읽으며 살기에는 수명이 너무 연장되었잖아요. ㅋㅋㅋ 한국 신화도 참 재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