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8일 수요일 날씨: 사랑스러운 겨울 날씨
“야, 니 옷 좀 샀네.”
지난 주말, 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좋은 뜻이었다. 엄마가 곧장 말을 받았다.
“돈 좀 줬나? 그래. 이래 좀 입고 댕기라. 니 옷 입고 댕기는 거 보면, 자가 왜 저카나 싶드라. 이래 좀 좋은 거 좀 사 입어라. 바지 벗어봐라. 맞으면 나도 사구로.”
옆에 있던 엄마는 “예쁘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예쁘다는 뜻이었다. 본인도 사 입고 싶을 만큼 말이다.
요즘 나는 옷에 돈을 좀 쓴다. 비싼 옷은 아니다. 내가 평소 입던 가격대에서 몇 칸 위로 올라간 정도다. 구천 원 티셔츠 대신 오만 원 니트, 이만 원도 안 하는 운동복 바지 대신 육만 원짜리 하늘색 골덴 바지, 남편 회사에서 직원 복지로 판매하는 오만 원짜리 스포츠 패딩 대신 십만 원짜리 귀여운 숏 패딩을 입는다. 언니와 엄마는 옷 가격을 듣고 또 칭찬했다.
“엄청 있어 보이는데 디기 싸게도 샀네. 니가 그러면 그렇지.”
나는 그런 쪽으로 능력이 있다. 좋은 걸 싸게 사는 능력. 이제는 거기서 한 발 더 가고 싶다. 나를 싸구려로 대하지 않는 쪽으로.
오늘도 결국 옷을 주문했다. 나는 인터넷 쇼핑으로 십만 원이 넘는 옷은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 그렇게 비싼 옷을 입어보지도 않고 사는 건 내 기준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시골에 산다. 유니클로와 탑텐 옷만 입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다. 그래서 큰마음을 먹었다. 패딩 코트 이십이만 원, 퀼팅 숏팬츠 오만팔천 원, 총 이십칠만팔천 원. 카드 비밀번호를 누르기 직전에 손가락이 몇 번을 멈췄다. 비밀번호를 누를 수가 없어 조건을 걸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반품하겠다는 단단한 각오까지 해대며 결제했다. 이렇게 비싼 옷은 결혼 생활 15년 만에 처음 사보는 거였다.
봄과 여름에는 흰 티셔츠, 가을과 겨울에는 검정 티셔츠, 그리고 청바지. 이제 이렇게만 입지 않기로 했다. 전지현 정도는 되어야 대충 입어도 멋이 나는 법이다. 나는 대충 입으면 대충 사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많다. 좋은 옷을 싸게 사서 예쁘게 입기로 했다. 계기가 있었다. 책 <1퍼센트 부자의 법칙>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다.
“어울리지 않는 상황은 이 세상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돈이 없더라도 분홍색 옷을 입으면 가난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가난하게 보이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면 곧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외모와 옷차림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라는 이호선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 댓글 하나가 나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잘생긴 거지가 동냥도 잘한다.”
너무 노골적인데, 너무 정확했다. 세상은 마음씨만으로 굴러가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
내가 매일 나가는 곳은 포도 유치원 앞이거나 마트다. 그런데도 요즘은 꼭 씻고 눈썹을 그리고 나간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당당할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은 옷을 입는다. 예전에는 겉모습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내면만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단정하게, 사랑스럽게 치장하고 거울 앞에 서보니, 내가 행복했다. 생각해 보면 내 모습을 가장 오래 보는 사람은 바로 나다. 거울 속에 ‘추리한 나’ 말고 ‘화사한 나’가 서 있으니, 내가 참 좋았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제일 큰 수익이었다.
재테크 강사들은 의복비는 물론 식비까지 아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결혼 이후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살아봤다. 세일 상품 중 가장 저렴한 옷만 골라서 교복처럼 입고, 절약을 철저하게 수행했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그 방식이 이상하게도 나를 부자로 만들지 못했다. 별로였다. 돈은 조금 더 모였을지 몰라도 마음이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아끼는 게 아니라 나를 쪼아대는 느낌이 들었다.
20대 후반 여성과 30대 초반 남성이 만나 가정을 꾸리면 처음에는 돈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걸 내가 흙수저와 결핍으로 해석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시간이 지나며 형편이 나아진 건, 남편의 월급이 쌓인 탓도 있고, 조금이라도 투자 공부를 하면서 투자한 탓도 있다. 울면서 손해 본 날도 있었고, 아주 소소한 성과도 있었다. 중요한 건, 이제 나는 부자가 되기 위해 나에게 억지로 압력을 주기보다, 나를 부자처럼 여유롭게 대하려고 한다. 풍요는 돈에서만 오지 않는다. 내가 나를 환대하는 태도에서도 온다.
오늘도 씻고 눈썹을 그렸다. 반 머리를 배배 꼬아 가죽 리본 핀도 꽂았다. 추워서 검정 패딩을 입기는 했지만, 세련미가 풍기는 스웨이드 앵클부츠를 신었다. 포도가 보면 ‘우리 엄마 너무 귀여워.’라고 말하는 볼터치도 살살 올렸다. 나를 자세히 봐주는 사람은 나와 포도뿐이지만, 그래서 더 치장했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와 포도다(남편, 미안. 당신은 2순위야). 나와 포도에게 제일 정성스럽게 보이고 싶다.
무려 이십칠만팔천 원이나 주고 산 옷은 내게 잘 어울릴까. 어서 왔으면 좋겠다. 매일 더 풍요로워지는 내 삶과 내 옷장을 기대해.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나를 어떤 값으로 대하고 있는가.
<대차게해봄>
매일 더 예뻐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