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겠다는 다짐의 정체

2026년 2월 21일 토요일 날씨: 따뜻해서 감사합니다

by 대차게해봄

‘휴재’라고 쓰려고 시작한 글.

‘휴재라고 쓰려고 시작한 글’이라는 문장을 쓰자마자, 또 계속 쓰기로 했다. 나는 늘 이렇게 마음을 번복하며 살아남는다. 언제까지 번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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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량제 비닐 20리터 두 장을 채웠다. 모두 아빠의 물건이었다. 엄마가 치웠다면 분명 이런 말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너거 아빠 꺼는 좋은 게 한 개도 없다. 내가 죽은 사람 꺼는 안 좋다고 쓰지 말라고 그래 캐도 너거 아빠는 안 된다. 쌔가빠지게 고생만 하고 좋은 물건은 한 개도 못 써보고.”

엄마가 말하는 ‘죽은 사람 꺼’는 교동 어느 골목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다. 세련되게 말하면 구제, 환경친화적으로 말하면 중고품. 엄마는 질색했고, 아빠는 애정했다. 나이키 운동화, 닥스 모자, 버버리 가방. 이름표가 번쩍거릴수록 더 선명해지는 사실이 있다. 아빠는 새 물건을 차마 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빠의 절약 덕분에 나는 풍족하게 살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 아빠가 만들어준 풍족함이 고맙기만 한 것이 아니다. 평생 갚지 못할 빚이 섞여 있다.


밤 10시 30분, 아빠 곁을 지키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에 진통제가 들어갔는데도 아빠가 너무 아프대.”

내가 아빠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말 뿐이었다. 그리고 바로, 내일 새벽 스웨덴 어느 시골로 15일 동안 출장가는 남편에게 전화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자기 출장 간 동안 아빠가 어떻게 되면... 자기는 어떻게 해야 해?”

남편은 모른다고 했다.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나도 그런 일은 상상하기 싫다.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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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고나니 대책 없이 슬펐던 마음이 점점 사라진다. 희한하다. 글은 폭발하는 내 울음을 차분하게 한 켠으로 옮겨놓는다.


만일 아빠가 돌아가신다면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거라 다짐한다. 아빠는 이제 돈돈돈, 돈 걱정 안 해도 되고, 절약하지 않아도 되고, 아빠가 돌봐야할 사람도 없으며 아프지도 않은 곳으로 떠나는 거다. 평화로운 곳으로. 그러니 단순히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울지 않겠다.


아빠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빠를 너무 사랑해서,

나에게 정말 자상한 아빠였기에,

아빠의 떠남이 내 삶을 무너지게 두지 않으려는

나만의 방식일 수도 있겠다.

<대차게해봄>

아빠와의 쿨한 작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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