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삼 Feb 03. 2024

이른둥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2

750g으로 세상에 태어난 내 아기


제왕절개 수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침대에 실려서 병실로 가는 소리, 누가 뭐라 뭐라 떠들어대는 소리, 아기아빠의 목소리들이 내 정신을 깨웠다. 일어나야 한다고 누가 계속 소리쳤다. 젠장. 몸에 힘이 하나도 없잖아. 눈꺼풀까지 보낼 힘도 없어 겨우 입술에 온 힘을 집중해서 입을 뗐다. "아기는요?" 지나가는 개미 발자국 소리만도 못한 볼륨이었지만 아기는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바로 인큐베이터로 가서 지금 의료진들이 돌보고 있다고.

아, 됐다. 아기가 무사하면 됐다. 원래도 힘이 없었지만 긴장이 다 풀린다.

너무 피곤하다. 옆에서 아기아빠가 계속 눈뜨라고 말한다. 아, 좀 조용히 좀 했으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잖아. 그렇지만 조용히 하라고 말할 힘조차 없다. 제왕절개를 하고 나서야 사람이 말할 때 배에 힘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다. 자꾸 감기는 내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아기아빠가 말했다.

"아기 사진 보여줄까?"

"찍었어?" 배가 너무 아파서 입모양으로만 말한다.

"응"

누워있는 내가 보이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사람인지 뭔지 모를 핏덩이 같은 작은 생명체가 꼼지락꼼지락 팔다리를 흔든다.

움직이는구나. 우리 아기 건강하게 팔다리 움직이는구나. 다행이다. 다행이야.

찢어진 뱃가죽보다 찢어진 마음이 더 아파왔다.

최대한 오래 품고 싶었는데 엄마뱃속에 있는 게 많이 힘들었구나.

세상에 나오느라 수고했다고 한 번 안아주지도 못하고 인큐베이터에 보내서 미안해.




그 이후로는 아이에게 줄 모유를 유축하고 회복에 힘쓰는 나날이었다. 어느덧 출산한 지 5일이 지나고 퇴원할 때가 되었다. 아기는 병원에 두고 나 혼자 하는 반쪽짜리 퇴원이지만. 아기얼굴은 퇴원할 때 처음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신생아집중치료실로 불려 가서 담당 교수님과 먼저 면담을 한다. 교수님은 아기의 컨디션을 얘기해 주시고 우리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아기는 750g으로 태어났다. 세상에. 우리가 사 먹는 우유가 1000ml인데 750이라니. 난생처음 들어보는 몸무게에 나는 또 멍해졌다. 교수님은 익숙하신 듯 많이 염려스러우시겠지만 부모님에게는 처음 겪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산아를 많이 만나는 입장에서 크게 염려스러운 케이스는 아니라고, 몸무게가 많이 적긴 하지만 다른 이벤트는 없다고 위로 섞인 말씀을 해주셨다. 현재까지도 주기적으로 병원에 내원하며 진료받는 생명의 은인인 아주 고마운 교수님이다.



손을 씻고 비닐가을 입고 장갑을 끼고 모자도 쓰고 철저한 방역을 거친 뒤 신생아집중치료실로 입장했다. “아기가 엄마 아빠 말하는 거 다 들어요, 그러니까 좋은 말만 해주세요”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가슴깊이 새기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아기에게 간다. 실제로 만난 아기는 생각보다 더 조그마해서 충격적이었다. 너무 작아서 마치 새끼강아지 같았다. 손바닥에 올리면 한 손에 올라올 거 같은 느낌. 하여간 내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제일 작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몸에 줄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단순히 심박수를 체크하는 것에서부터 모유를 공급하고 숨 쉬는 걸 도와주는 것까지 참 많이도. 차오르는 눈물을 꾹 누르면서 재잘재잘 얘기를 시작한다. "태명아, 엄마 왔어. 엄마 보고 싶었지? 세상에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잘 자라주고 있어서 너무너무 고마워"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간호사가 있어서 민망하지만 멈출 수 없다. "태명아, 모유 많이 먹고 엄마가 자주 보러 올게. 사랑해" 말을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 아무 반응 없이 잠만 자고 있다. 꿈속에서라도 엄마 목소리가 가 닿기를.



길지 않은 면회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신생아집중치료실 문이 등 뒤로 닫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면서 아기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보다 너무 작더라 그렇지? 근데 그래도.." 괜찮은 척이 무색하게 말을 시작하자마자 참았던 눈물도 같이 쏟아져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니큐복도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출산 후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나는 복도에 앉아서 눈물과 콧물을 쏟아냈다. 뱃속에 있는 아기가 엄마 마음을 읽을까 하는 염려 없이 오랜만에 아주 펑펑.



실컷 울고 나서 새빨개진 눈으로 퇴원수속을 밟는다. 입원할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퇴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적어도 2달은 입원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2달은커녕 2주도 채 지나기 전에 이 병원을 나서게 될 줄이야. 게다가 혼자 퇴원하게 되는 것 또한 내 예상에 없었다. 이 병원을 나갈 때는 당연히 속싸개에 쌓인 아기와 함께 퇴원하게 될 줄 알았는데. 역시 인생은 예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기가 병원에 있는 게 당연하다. 지금 나와 같이 집으로 가봤자 아기에게 모유한입 제대로 먹일 수 없을 테니까, 아기는 의료진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해지는 게 우선이다. 작은 아기조차 본인의 몫을 다하며 자라고 있으니 나는 아기를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곧 만나자는 인사를 하며 나는 아기가 있는 병원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른둥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