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어서

by 아삼


내 이혼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지난 일을 꺼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때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그때의 감정까지 느껴져서 불행했다. 지난 일을 들추는 게 맞는 걸까. 그래서 사사로운 에피소드는 제하고 큰 틀로만 엮었다. 결혼생활은 빼고 이혼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적어냈다. 이혼사유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나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빌게이츠도 이재용도 이혼하는 마당에 사랑도 사라지고 서로를 갉아먹는, 피차 불행한 결혼 생활을 아등바등 유지해야 할 이유는 또 뭔가. 그와 내가 주고받은 상처를 나열하면 2박 3일을 적어도 부족할 거고 별로 기분 좋은 얘기도 아니다. 사실 그가 볼일 없는 이곳에 내가 받은 상처를 낱낱이 흩뿌리고 그를 실컷 욕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하고 싶다. 매일 그의 얼굴을 보며 그를 증오하던 그 시절이 나에게는 정말 지옥같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며 산다는건 내 마음속에 독을 품고 사는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끝내 그가 죽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깨달은 순간 나는 이혼을 결심했는데, 이혼을 하고 난 지금도 그를 미워하는건 왠지 자해하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


지나간 일에 잘잘못을 따지는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메타인지가 꽤 잘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저는 잘못이 없는데 그 사람때문에 이혼한거에요. 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나 역시 별다를 바 없는 미성숙한 인간이니까.




나는 그의 입에서부터 나를 향해 날아드는 칼날을 수시로 받아내야 했다. 고립된 채 매일같이 폭언을 들었던 그때의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무기력해질 수도, 우울감에 빠져있을 수도, 눈물로 세월을 보냈을 수도 있었지만 분노로 그 상황을 이겨내려 애썼다. 뭐 분노라는 게 긍정적인 감정은 아니지만, 그때는 나름 살기 위한 발악이었달까. 사나운 발톱하나 없는 치와와처럼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털을 곤두세웠다.

그 역시 본인을 경멸하는 내 눈빛에서, 스치기도 싫어하는 내 태도에서, 싸늘한 분위기에 매 분 매 초 상처를 받은 피해자일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들추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지금 그 상처는 나에게는 흉터가 되어 더 이상 아프지도 치료가 필요하지도 않지만 영원히 지워지지도 않을 것이다. 아직은 울컥울컥 그가 남기고간 상처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문득 떠오를 때도 있고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로 내 모습과 다르게 행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좋은 추억을 상기하며 그리워할 필요도, 상처받은 일만 생각하며 그를 미워할 필요도 없다는걸 안다. 우리는 사람의 단면만 보고 이러니까 그는 좋은 사람이야 이러니까 그는 나쁜 사람이야 라고 쉽게 정의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유일하게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에게는 똥차인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벤츠가 될 수 있다는거다. 안타까운 점은 그 수많은 면들 중에서도 나와 하나도 맞물리는 모양이 없었다는 것. 우리는 서로에게만은 지독히도 나쁜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다.



나는 이혼으로, 아이로 인해 지난 30년간보다 더 많은 성장을 했다. 나이를 먹는다고 드는 게 철이 아니라 비극에 익숙해지는 것이라는 말은 정말이었다. 이혼 후 나는 그를 원망하는 대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데 시간을 쏟았다. 좋은 아내는 되지 못했지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내 과거를 똑바로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현재 아이와 나는 행복하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도. 나와 함께하던 시간보다는 좀 더 자유로울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 성공한 이혼 아닌가? 꼭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와서 의사가 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듯이, 이혼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더라.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브런치에 오고 나니 이혼은 이미 흔한 소재였다. 꼭 이혼뿐만이 아니라 각자의 아픔을 글로 털어내는 이곳이 나는 참 좋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상처 입은 치유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각자 상처를 받아 피를 흘리면서도 글로써 서로를 위로해 주는.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계획대로 되는 것보다 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그래서 겪지 않은 일에는 좀 더 겸손해야 한다고 느낀다. 살다 보면,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시련과 고난은 동반자더라. 나보다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오신 분들께는 귀여운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와 같은 힘듦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당신의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고 싶어서.


우리는 모두 그 자체로 완전해요. 잘살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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