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타협한 일이 준 인사이트
꿈꾸던 20대
20대의 나는 한 마디로 꿈꾸는 사람이었다. 꿈을 꾸면 나에 대한, 내 삶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고, 뭔가 이뤄질 수 있을지도 모를 거란 설렘은 나를 움직이는 동기였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좋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좋아하는 것들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에 보았다. 하지만 뱡향 성의 부재. 대학 졸업 후 방황의 시기만 늘었을 뿐, 방향성이 없는 꿈과 시행착오는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첫 직업으로 '가장 현실적인 일'을 선택했다.
나는 영양사였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람들의 반응에 예민해져야 하는 영양사 일은 둔감하고, 소극적인 내 성격과는 정반대의 일이었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에게 일을 시켜야 하는 것도 불편했고, 통제 불가능한 일이 매일 터지는 업무 환경과 그 해결책을 매번 빠르게 제시해야 하는 일도 신중해서 결정과 행동이 느린 나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일, 그 일만이 유일하게 좋았다. '가격'이라는 한계에 더는 새로움을 추구할 수 없을 땐, 그 즐거움마저 잃었지만..
영양사라는 일이 나에게 맞지 않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경험 없이 포기하는 것보다 한 번쯤은 다른 일을 경험해 보는 것이 장기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급식 경영도 배워두면 왠지 쓸모가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나의 소극적인 성격이나 느린 성격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느꼈으니까. 결국, 자기 극복과 성장을 위해 '급식 영양사'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는 달성했다.
보이지 않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메뉴 개발이 영양사 업의 전부라면 꽤 할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양사는 정말 급식 운영( 조리원 교육 및 관리, 매출관리, 영양&위생관리, 식자재 관리, 시설관리 등)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모든 것들을 컨트롤해야 하는 사람이다. 예측 불가능한 일은 매일 발생했고, 1일 식수도 1,000~최대 24,00이 넘었으니,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일의 슬픔
하루도 조용한 주말이 없었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매일 쏟아졌다. 그래서 마음은 늘 불안했다. 내 주말은 상관없는 듯 울려대는 전화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만성 소화 불량과 잦은 근육통을 안고 살았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일을 그만둬야 내가 낫겠구나를 느꼈다. 꾸역꾸역 버티는 내가 안쓰럽고 왠지 서러웠다. 친구들에게 일의 불만족을 매번 토로하는 것도 속상한 일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공허했다. 늘 힘들다는 내 말을 들어주느라, 친구들도 진짜 힘들고 지쳤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좋은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고, 열정적이었고, 늘 긍정이었는데, 잘못된 업의 선택으로 좋은 게 다 사라진 내가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일은 나를 바꾼다
원래 나는 느긋한 성격에 많은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소수의 깊은 관계를 선호하는 편이다. 감정 공감을 잘하고, 새로운 지식을 쌓고 깊이 탐구하는 걸 즐긴다. 내가 아는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가르치고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의견을 묻고 함께 협력하면서 가장 좋은 결정을 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활달하거나 사교적이지도 않고, 눈치가 빠른 편도 아니다. 선택과 결정이 빠르고 행동이 민첩한 멀티플레이어 타입은 나와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업의 특성상 그런 내가 되어야만 했으니 심리적인 갈등이 심했고 마음의 문제가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는 것도 당연했다.
그 일을 약 5년~6년을 버텼다. 돌아보면, 맞지도 않은 일을 왜 그렇게 미련하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싶을 때가 되어서야, 그 일을 그만두었다. 아직도 그 시간들을 떠올리면 울컥한 감정이 든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길이랄까?
영양사 일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하기 싫은 일도 끝까지 하는 힘'이다. 나에겐 없던 '끈기'라는 게 생겼다. 그리고 사교성도 커진 것 같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버텨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를 되돌려 보면 버틸 수밖에 없었다. 다음 스텝이 없었으니까. 하기 싫은 일 속에 살다 보니,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더라. 내가 사라졌다.
버티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필요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원래 일이란, 다 그런 거라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 나의 괴로움을 흔한 투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만 왜 이런 걸까?"그런 생각도 많이 했다. 외로웠다. 공감 1도 없는 세상이 참 쓸쓸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버티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이랄까? 아무리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와도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침착하게 나의 일에 집중하는 법'을 익혔다.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에 안정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영양사 일은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점장님은 '모든 걸 자기화하는 사람'라고 말했다. 아주 사소한 일도 프로답게 접근하는 습관은 그 일을 통해 만들어졌다. 돌아보니 얻는 게 참 많다.
일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뜨겁다. 마치 내 열정은 스무 살 같다. 열정은 나이를 먹지 않나 봄. 하지만 영양사 일은 일의 방향성이 일치하지 않았다. 일에 쏟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전혀 받지 못했던 것도 소진 감의 원인이 되었다. 불필요한 노력들을 과하게 쏟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모르겠는 걸....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기에 버틸 수밖에 없었다.
배우자를 찾는 것만큼 중요한 일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사람은 나와 맞는 않는 일도 쉽게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일에 대한 가치가 크고, 일에서 의미와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것도 경험으로 배웠다.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높은 편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일이란, 배우자를 찾는 것만큼 중요했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 같음)
꿈을 이룬 사람
영양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6개월 후, 마침내 내가 꿈꾸던 회사를 만났다. 출근길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내가 행복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 예뻐 보였다. 역시 스스로 느끼는 행복의 질량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꿈을 이룬 사람'이 되었다. 내 안의 사라진 긍정과 밝음도 완전히 회복했다. 일 하나가,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불행하게 할 수도 있는 걸 처절하게 경험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서 커리어 코칭까지 배웠다.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당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세요! 그런 맘.
"오랫동안 꿈을 꾸면,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은 20대 시절부터 마음에 새겼는데, 나의 현실이 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꿈을 이루면 새로운 꿈이 생겨난다. 지금 나의 꿈은 프리랜서로 좋아하는 일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 꿈도, 해피엔딩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