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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파티쉐 Aug 31. 2021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갑질이 대중화되어가는 중인걸까

   어제 낮에 뉴스를 검색하는데 '트럭에 치어 배달기사 사망'이라는 헤드라인이 보였다.  신호대기 중이던 라이더가 트럭에게 치어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그 자리는 얼마전 다른 배달기사의 사고가 났던 곳이라 더 충격을 더했다.

그때 삼일 전 본 뉴스가 생각났다.  그날도 점심을 먹다가 유튜브를 슬슬 넘겨보는데 한 채널에서 배달기사 관련 뉴스를 소개했다.  배달기사가 한 음식점에 콜을 받아 갔다가 급했는지 직원에게 화장실을 사용해도 되는지 물었고, 직원은 그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뒤 사장이란 자가 나타나 네가 뭔데 화장실을 맘대로 쓰느냐 화를 냈고, 배달기사는 직원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이어 음식점 사장은 "야이 XX야.  내가 사장이야, 내가.  XX야"더하기 온갖 쌍욕을 줄줄히 쏟아냈다. 


   난 방금 삼킨 밥이 위에 도착하기도 전에 체하는 기분을 느꼈다.  화장실 한번 쓰려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자에게 쌍욕을 들어야하는 그 심정은 말로 무엇하며, 그의 부모가 옆에서 봤더라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을지 생각하니 그 사장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어 요즘 화장실에 '라이더 출입금지' 푯말을 쓰는 매장이 늘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아무런 논평없이 뉴스를 마무리하면서 "화장실 정도는 좀 쓰게 해줍시다"로 훈훈하게 마무리 짓는 진행자가 더 괘씸하게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그 이슈에 관해 얘기를 늘어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맘잡고 일하는 그가 우울해 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내 첫째 동생은 OO물류센터에서 화물기사로 일한다.  한달 여전까지는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했다.  거제도 길바닥은 돌부리 하나까지도 어디있는지 안다며 농담하던 내 동생.  그는 사실 '대기업'출신이다.  5년 전, 조선소사태가 터졌을 무렵 동생은 회사를 나왔다.  말이 명예퇴직이지, 사실 명예롭게 나온 것도 아닌데다 퇴직금 한 푼 지니지 못한 채였다.  다 말하지 못하는 집안사정으로 이미 퇴직금은 다 정산해서 써버린지 오래고, 오히려 갚아야 할 빚이 아직도 산더미였다.

그가 회사 퇴직 후 처음 시작한 일은 보험회사 영업이었다.  앞서 그만 둔 선배들이 갑자기 전화하거나 찾아와서 보험얘기를 하면 '왜 저러고 사나' 싶다던 그도 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름 회사내에서 치열하게 쌓아온 경력이 막상 회사밖에선 쓸모가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 듯했다.  그는 가족과 친구, 지인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돌리고 보험가입을 열성적으로 권했다.

그 다음으로 그가 택한 일은 택시기사였다.  거제도에서 택시로 밥벌이를 한다는 건 어지간히 힘든 일이었는지 곧 화물 트럭기사로 직업을 바꿨다.  그마저도 군대에서 다쳐 수술한 무릎이 늘 말썽이라 물건을 옮길 수 없으니 결국 트럭일을 그만두었다.  그 와중에 지게차도 몰고, 철판도 나르고, 크고 작은 화물차를 죄다 몰아봤다고 깨알같은 자랑을 했다.

그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버스를 운전하던 친구에게 조언을 얻어 버스기사를 하게 되었다.  마을버스는 5분의 짬도 없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시간을 다투는 일이었다.  소변 볼 때 말고는 식사도 운전 중 햄버거로 때운다는 그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그는 나처럼 길에서 뭔가를 먹는 데 익숙하지 않은 '대기업'출신이었으니까 무척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 후 대리운전도 하고, 온라인 스토어를 해보자는 내 꾐에 넘어가 한달 반정도를 투자하다가 결국 라이더의 세계로 돌아갔다.  

   

   손님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라이더에게 푸는 것일까.  이젠 하다하다 음식점 사장까지 나서서 갑질에 동참을 하다니.  돈을 많이 버는 건 고사하고, 온갖 진상 손님을 만나도 얼굴 한 번 붉힐 수가 없는 게 라이더의 삶이다.  동생이 처음 갔던 라이더사무실은 지저분하고 작은 창고였고, 앉을 자리도 없지만 담배냄새가 꽉 차서 숨도 제대로 쉴 수도 없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휴지통 밖으로 흘러넘친 담배꽁초는 애교였다.  콜이 없을 때는 그냥 길바닥에 앉아 쉬고, 뙤약볕이나 비오는 날은 남의 집 처마밑에서라도 대기를 해야하는 게 라이더의 삶이었다.  밥먹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의 구분이 없는 건 당연하고, 그나마 배달일이라도 많았으면 했지만 4월과 5월은 꽃구경 철이라 그런지 배달일이 오히려 줄었다며 울적해했다.  

오히려 배달기사는 갈 수록 많아졌다.  온라인 구직사이트만 봐도 일거리가 '쿠팡배달' 또는 '배달의민족 배달'뿐이다.  쿠팡이나 아마존같은 거대 공룡기업이 많아지면 결국 배달일 밖에는 선택지가 없어지는 것이니까.  꼭 내 동생이 아니더라도, 내 친구나 내 남편, 내 아버지가 배달업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뭔가 시작하기에는 애매한 40대 중반.  위험한 건 둘째치고, 허리디스크가 있는 동생이 등받침도 없는 오토바이를 몬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하니 내 마음이 다 쓰렸었다.  다행히 동생이 지금은 물류센터 기사로 적응 중이라 라이더 기사를 보면서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마저도 미안해졌다.

내 주위엔 아직도 쿠팡배달을 하는 지인이 있고, 했던 사람도 있고, 오토바이 라이더를 해본 사람은 부지기수로 많다.  할 일이 넘치고, 오라는 데가 많은데 배달일을 하는 게 아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배달로 학비를 버는 청년도 있고, 내 동생처럼 퇴직하고 선택지가 없는 가장이 배달을 하기도 한다.  좋아서 신호를 무시하고 쌩쌩 달리는 게 아니다.  고객클레임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질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오토바이든 트럭이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삶 자체가 너무 힘겨운데 저런 상식없는 인간을 보면 정말 가서 뺨이라도 때리고 싶다.


   '국민의 삶을 정부가 왜 책임지느냐, 국민이 책임져야지'라고 어느 대통령 후보가 말했다.  그의 동생이, 아내가, 아버지가 라이더의 삶을 살았더라도 그렇게 시원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에이그, 싸대기칠 내 손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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