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밖에는 비가 가열차게 내리는데, 이제 막 시작한 저녁 6시 라디오의 DJ는 첫 곡으로 최성수의 '풀잎사랑'을 틀었다.
DJ야 내 또래니까 그렇다쳐도 저런 노래를 알 정도면 도대체 담당 작가의 나이가 몇인거야 라는 생각이 매번 드는 대목이다.
'나는 햇살 햇살 햇살, 그대는 이슬 이슬 이-슬'♬♪
그러고보니 내게도 햇살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슬이 아니라 외려 무겁게 비를 몰고 다니는 구름같은 사람이었다. 장대비든, 소나기든, 추적추적 내리는 비든, 오락가락하는 지조없는 비든 간에 변화무쌍한 비를 전적으로 좋아하는 내가 포근하고 밝은 기운에 휩싸이게 만든 그 사람은 날이 좋은 때에 더 유난히 생각이 난다.
해가 나는 날이면 빨래가 바짝 마를 것을 기대하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그를 만날때면 늘 나는 햇살속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에게선 좋은 볕에 잘 말린 빨래의 향이 났다. 사진기를 들이밀고 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 카메라 렌즈에까지 빛이 좌악 번지는 기분이었다.
회사작업복을 입은 그가 나를 의식한채 최대한 씩씩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내가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후로 20여년을 많은 사람과 연애했지만 그런 생각을 들게 한 사람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간 세월의 풍파에 못 이긴 상대들이 순수함을 잃어서 일수도 있고, 되려 내가 나이들수록 욕심이 많아져서 만족이란 걸 모르게 되어서 일수도 있다.
어쨌든 햇살같은 그는 조용하고 포근한 양지(따뜻한 땅)같은 내 회사동료와 결혼을 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애시당초 햇살과 구름은 어울릴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