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06. 여행이 즐겁기 위해 더 필요한 것
부모님과의 여행을 마치고 보름 정도 지났을까? 이번엔 뉴욕으로 향했다. 미안하지만 어쩌면 부모님과의 여행은 미국여행을 가기 위한 빌드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당시에는 다음 회사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고, 출근 일정만 기다리면 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간 받았던 퇴직금으로 여유 있게 3주 간 여정을 꾸렸다.
문화 강국이자 다국적 인종들이 함께 사는 세계 최고 1위 국가인 미국은 처음이었기에 언제나 그렇듯 너무나도 설렜다. 무계획 유럽 여행도 해봤지만, 나 홀로 미국은 완전 또 다른 느낌이었고 약간의 걱정도 섞여 있었다. 비교적 가깝고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권 여행과는 다르게, 온통 제이지가 랩 하듯이 속사포 지나가는 1000% 오리지널 스피디한 영어와 덩치 큰 백인, 흑인들 무리 속에서 난 서른 먹은 세상 다 알 것 같은 사내라 생각했지만, 그냥 변방 국가에서 온 작은 소인일 뿐이었다.
유럽은 같이 여행 갔던 친구가 있었고, 일본에서는 약간의 언어와 주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교적 외롭지 않았지만, 혼자 떠난 짧지 않은 여행이었기에 즐거움에 배를 하기 위해서는 친구가 필요함을 느꼈다. 기왕이면 나 같은 한국인 관광객 말고, 지역을 잘 아는 현지인이나 외국인이면 더 좋겠다. 호기심 많은 나로서 여행에서 궁금한 게 있으면 이것저것 바로 물어보고 다양한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데 제약이 많았다. 물론 요즘엔 구글맵이 너무 잘 되어 있고, 파파고만 있으면 겁 날게 없어 할렘가도 거뜬하다. 더불어 내 가장 큰 장점인 만땅 체력으로 맨해튼 시티와 시내 구석구석을 밤낮으로 샅샅이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으면 고생도 덜하고 더 큰 재미를 얻겠다는 생각을 몸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과거 다른 국가들에서도 많이 느꼈었지만, 그때 혼자 한 미국 여행에서 느낀 몇 가지는 다음과 같았다.
1. 진짜 다양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
2. 운동을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
3 여행의 재미를 더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어가 필요할 것
형언할 수 없는 자유의 끝판왕인 미국에서의 즐거움과 아쉬움이 공존 가득했던 뉴욕에서의 시간이었다.
07. “언제 돌아올지 나도 모르겠어”
인생에 사이클이 있듯 좋을 때도 많았지만 물론 반대로 안 좋았던 시기도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프레시’ 혹은 기분 전환을 위해 여행을 가고는 하지만, 단순 일시적인 여행이나 기분 전환으로 극복하기엔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19년 봄이 나에게는 그랬다. 때문에 그 좋은 대기업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진짜 제대로 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최대 딱 1년만 다녀와야지!
물론 그전에 올 수도 있는데 언제 올진 나도 아직 모르겠어”
어디를 떠날까 한참을 고민하다 그렇게 결국에는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를 끊고 유럽으로 떠났다. 스페인 이후에 어디를 갈지, 언제 한국에 들어올 지에 대한 티켓은 없이 그냥 떠났다. 당시 이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미안했던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인생에서 이런 기회는 이제 앞으로는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고, 사춘기를 지나 삼십춘기가 넘어가는 적지 않은 나이에 찾아오는 고민들이 그득했던 시기였던 지라 그렇게 또 한 번 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스페인에 도착한 후 어디로 이동할지, 어디서 잘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도 없고, 특별히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욕심이나 환상도 없었다. 당시에는 세계 일주라기보단 여행 중에 지치면 한국에 들어가고 다시 나오면 되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버스나 기차보다도 비행기를 더 많이 탔던 기억이 있고, 때문에 갖가지 교통수단들을 통해 여행하는 법도 터득하고 신기한 경험들이 많았다.
그 당시 마케팅을 하는 친한 친구들 모임에서 항상 들었던 말이 “카메라를 하나 사서 영상들을 기록해라”, “유튜브를 한 번 해봐라”, “브이로그를 남겨놔라”라는 말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회자되고는 하는데 그랬다면 과연 어땠을까? 요즘엔 혼자서 괜한 상상을 해보곤 한다. 요즘에 여행 유튜버들이 공항에서 노숙하고, 어딘가에 잡혀가고, 짐을 잃어버리고 하는 웃픈 콘텐츠들을 보면서 내가 겪은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떠오르는 걸 보면 여러 생각이 들곤 한다.
한 번은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로 넘어가는 고속버스에 나 혼자 탑승해서 가고 있는데 국경을 넘는 심사대에 도착하여 여권만 챙기고 차에서 내리라는 기사 아저씨의 방송에 자다 깨 내렸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먼저 심사대에 직원과 자연스러운 그 들만의 언어로 몇 마디 대화를 통해 국경 심사를 통과해 버렸고, 내 차례가 되어 몇 발자국을 앞으로 내디뎠는데 그때, 버스 기사 아저씨가 혼자 시동을 걸고 출발해 버려 고속도로 국경에 혼자 남겨진 채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건 극 E의 성격을 가진 기사 아저씨의 장난?!이었어서 당시에는 웃픈 엔딩으로 끝났지만, 참으로 황당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있다.
또 한 번은 필리핀에서 한 달 살이 후, 호주로 넘어가는 비행기에서 어떤 승객들로 인해 1시간이 넘게 지연되었는데, 당시 싱가포르를 경유해서 가야 했던 나로서는 조마조마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이나 지연되었는데 당연히 싱가포르 창이공항에도 늦게 도착하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으로 나와 같은 비행 일정을 가진 외국인들이 몇 명 같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기다려주면서 간신히 호주행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호주에 도착 후, 우리들의 짐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는 거… 그 짐을 찾느라 2주일이 걸렸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호주에서 3개월 살기 일정이었는데 지갑과 여권만 있었기 때문에 멜버른에 도착한 후에는 모든 걸 새로 다 사야 했던 끔찍했던 기억이 지금도 아찔하다.
근데 요즘은 유튜브나 방송에서 이런 게 하나의 재미이고, 타인의 영상 시청을 통해 여러 가지 문화들과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대리 만족도 하고 도전 의식도 생겨나는 세상이란 점에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호주에서 90일이 꽉 차 지나던 시기쯤, 하필 딱 그때 코로나19 가 전 세계 국제적으로 빅이슈가 되면서 귀국하게 되었고, 그렇게 여정은 마치게 되었다.
08. 가장 즐거운 시간 ; 스카이스캐너
트리플 J 인 나에게 있어 언제부터인가 여행에 있어서는 극 P가 된 듯하다. 가서 정하고, 가서 생각하고, 느긋하게 그 안에서 겪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여행이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바뀐 듯하다. 그 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낯설고 재미있다. 어쩌면 그 장기 여행 이후부터는 웬만한 4박5일 여행은 너무 짧게만 느껴지고, 총알과 연차만 모아서 또 언제 떠날지 모르는 긴 여정을 꿈꾸며 또 이유 없이 스카이스캐너를 접속한다. 그럼에도 여행은 언제나 늘 좋다.
덕분에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여행들을 다닐 수 있었고, 여행에 쓴 돈만 하더라도 아마 계산하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은 것들도 많았다. 특히 장기 여행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내가 어떤 것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어떤 걸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내 관심사와 앞으로의 방향이 조금은 더 또렷해질 수 있었다. 지금의 나 역시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 많이 알려진 관광지를 먼저 찾겠지만 낯선 환경에 떨어진 나 자신으로부터 나도 모르던 새로움을 발견할 수도 있고,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어떤 이들의 말에 공감을 꾸욱 누른다. 이것들이 겹겹이 쌓여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보고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
“진심으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떠나라!”
종종 사회면에서는 MZ세대들을 무조건적으로 깎아내리곤 하는데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야 나중에 미래가 편하다’라는 윗세대들의 말에 어느 정도 일부는 맞고 공감하지만, 일부는 반대한다. 스포츠카를 타는 나이에 정답은 없지만, 기왕이면 "젊어서 타는 게 더 멋있다" 는게 내 생각이다. 사실이다. “어린놈들이 스포츠카는”라며 혀를 차던 사람들은 우리의 과거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젊고 잘생기고 예쁜데 능력까지 있으면 얼마나 부럽지 않은가? 나이에 걸맞은 물건들과 보기 좋은 행동들이 있듯
“할 수 있을 때 책임이 가능하다면 가능한 선에서 얼마든지 타고 즐겨라!”
비단 스포츠카와 여행뿐만이 아니다.
그 정도에 판단이 가능한 성장한 성인이라면,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후회하지 않을 선에서 얼마든지 즐기고 떠나기를 감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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